우리 마음 속의 ‘아간’ 그 어두움을 없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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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음 속의 ‘아간’ 그 어두움을 없애야
[여호수아 7장 1절 ~ 26절] 2020. 10. 18. 주일 오전 예배 설교 - 834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20.10.23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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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에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제 인생에 절망하고 근심해야 할 일이 많았지만, 1962년 예수님을 만난 뒤부터 제 모든 일을 예수님께서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금년 2020년도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 이루고 계십니다. 지난 5월, 온라인 성경세미나가 276개 방송국을 통해 중계되면서 전 세계 약 10억 명의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로 계속 복음의 역사가 일어났는데 지난 9월 29일 중남미 기독교지도자연합(CLF) 온라인 모임에 7500여 명의 목회자가 참석했습니다. 이어서 지난 15일에 가진 아프리카 연합 온라인 CLF 모임에는 약 1800여 명의 목회자가 참석했고 이 모임이 12개 방송국을 통해 중계되면서 1500만 명의 시청자들이 함께했습니다. 또 다음 날 가진 인도 CLF에는 14개 방송국을 통해 2800만여 명이 말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요한1서 1장 9절에는

제가 이번 CLF 모임에서 한 이야기는 너무나 단순한 이야기입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을 보면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많은 목회자가 이 말씀의 분명한 뜻을 모르고 자백하면 죄가 씻어진다고 가르칩니다. 그렇게 해서 죄가 씻어지면 좋은데 아무리 자백을 해도 교인들 마음에 죄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요한일서 1장 9절만 보지 말고 성경을 전체적으로 깊이 들여다보면 자백만으로 죄가 사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레위기 17장 11절에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고 기록되어 있고 히브리서 9장 22절에는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일서 1장 7절에도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백이 우리 죄를 사하느냐 예수님의 피가 우리 죄를 사하느냐 그것이 관건입니다.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는 조건

저는 성경에서 그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그 해답에 가장 도움을 준 성경이 레위기의 속죄 제사였습니다. 레위기 1장은 번제에 관한 말씀이고 2장은 소제, 3장은 화목제, 4장은 속죄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4장의 속죄 제사는 첫째 제사장이 죄를 범했을 때, 둘째 온 회중이 죄를 범했을 때, 셋째 이스라엘 족장이 죄를 범했을 때, 넷째 이스라엘 평민이 죄를 범했을 때로 나뉩니다. 저는 평민이라 생각하여 평민의 죄에 대해 어떻게 속죄 제사를 드리는지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레위기 4장 27절을 보면 “만일 평민의 하나가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다가 그 범한 죄의 깨우침을 받거든”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있습니다. 죄를 범하지 않은 사람은 죄 사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죄를 지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말하면 죄를 지었고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은 사람이어야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죄인임을 깨닫고 고백했다고 해서 죄 사함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죄를 속하기 위해서는 나의 죄를 위해 누군가가 대신 죽어야 합니다. 그래서 속죄 제사에 흠 없는 암염소를 끌고 오는 것입니다. 끌고 온 암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죄를 넘기고 제사장은 그 염소를 잡아 그 피를 번제단 뿔에 발라야 죄를 사하게 됩니다.

고백만으로는 될 수 없어

우리 죄를 위해서 누가 대신 죽었습니까? 우리 죄를 위해서 양이나 염소가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면서 우리 죄를 씻으셨습니다. 죄를 씻는 것은 고백이 아니라 예수님의 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미 우리 죄를 다 씻어놓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해야 할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1장 9절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죄를 깨닫고, 고백하는 것까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 죄를 사하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기독교인 대부분이 고백만 하고 십자가와 연결을 시키지 않아 고백하고 또 고백하면서 늘 죄 속에 머물러 있습니다. 제가 CLF 모임에서 기성교회 목회자들에게 이 부분을 이야기했습니다. 수많은 목회자가 깜짝 놀라며 구원받고 자신들의 교회에 이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지금 전 세계적으로 기독교 복음의 혁명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자기 생각을 따라가면서

우리가 죄 사함을 받은 후 예수님이 함께하시면서 우리 마음에 얼마나 많은 기쁨과 소망을 주시는지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람이기에 하나님의 영의 이끌림을 받기보다 자기 생각을 따라가 하나님과 다른 마음의 세계를 갖게 될 때가 많습니다. 문제는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하나님과 다른 마음을 갖게 되면 하나님이 일하실 수 없어 무척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여호수아 7장은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성을 점령한 후 아이 성을 점령하기 위해 전쟁을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려면 여리고 성을 점령해야 했는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여리고 성에 정탐을 보내야 했고, 요단강을 건너야 했으며, 견고한 여리고 성을 무너뜨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모든 일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시날산 외투를 숨기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 성 보다 작은 아이 성을 점령하는 데는 한 삼천 명만 올라가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아이 사람들에게 패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장로들과 땅에 엎드려 기도를 드리자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언약을 어기고 바친 물건을 취하고 도적질하였다. 그 사람을 제하기 전에는 너희에게 일할 수 없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아간이 여리고 성에서 시날산 아름다운 외투와 은금을 숨긴 것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계속 역사하셨는데 그것이 중단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았을 때 너무나 감격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주를 위해 살고 내 인생을 다 드려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인생을 살다 보면 죄에 빠지거나 잘못된 일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것이 우리와 하나님의 사이에 벽이 되어 이전의 기쁘고 즐거웠던 신앙생활이 점점 죽어가게 됩니다.

그 어떤 죄를 지었다해도

저는 구원받고 난 후 지금까지 하나님이 제가 하는 복음의 일을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도우시고 복된 길로 인도하시는 것을 경험하면서 살아왔습니다. 특히 하나님이 2020년 들어 전 세계를 향해 복음의 문을 활짝 여시는 것을 볼 때 너무나 감격스러웠습니다. 죄 사함을 받고 예수님과의 영적 흐름이 정상적으로 흐르면 우리가 주님의 이끌림을 받으면서 놀라운 삶을 살게 되지만 그 영적 흐름이 막히면 우리 생각의 세계가 강해지면서 점점 세속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어떤 죄를 지었다고 해도 예수님의 보혈로 해결되지 못한 죄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항상 예수님과 새로운 관계를 회복할 수 있고, 언제든지 우리의 문제를 주께 맡기면 주가 우리를 믿음 가운데로 인도하시면서 해결해 주실 수 있습니다. 

한양대학병원 심방을 통해

예전에 제가 동서울 교회에서 저녁 예배를 드리고 오는 길에 한양대학병원 앞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아내가 “여보, 안 형제님이 이 병원에 입원했는데 들렀다 가요”라고 말해 병실을 찾아가 안 형제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제가 형제님께 물었습니다. “형제님이 하나님 앞에 성실하고 거룩하게 살았다면, 하나님이 형제님의 기도를 들어주시겠죠?” “예, 그러시겠죠.” 제가 그 질문을 통해 형제님 마음의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형제님은 자신이 부족하고 연약해서 하나님이 일하시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성경책을 펴고 히브리서를 읽었습니다.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히 10:14) “형제님이 아무리 선하고 정직하게 살아도 예수님의 보혈만큼 능력이 있겠습니까? 성경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우리를 영원히 온전케 하셨기 때문에 형제님은 하나님 앞에 온전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형제님이 기도하면 반드시 하나님이 들으세요.” 제 이야기를 듣고 형제님은 소망을 얻어 믿음으로 병에서 나을 수 있었습니다.

아간을 제하고 난 후에야

예수님의 피는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기에 부족함 없이 완벽하게 우리 죄를 씻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단에게 속아서 내가 부족하고 연약하다고 여기고 하나님이 우리를 돕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하나님을 향한 우리 마음을 죽게 합니다. 우리가 잘못했을 때, 부부싸움 했을 때, 하나님께 실수하거나 범죄를 했을 때 마음이 어두워지고 하나님과 멀어집니다. 그러나 요한일서의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7)라는 말씀처럼 우리가 그 잘못을 깨닫고 우리를 거룩하게 하신 예수님의 피와 우리 마음이 연결되어야 어둠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여리고를 점령할 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너무나 쉽게 여리고 성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다음 아이 성을 점령할 때는 아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르고 아름다운 외투와 은금덩어리를 감춘 그 어둠을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제하시고 난 후에야 일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허물은 어떻게 제해야 합니까? 이스라엘이 죄를 범한 아간을 제하고 난 후 다시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었던 것처럼 예수님이 죄를 범한 우리를 대신해 죽으셨기 때문에 언제든지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가 다시 회복될 수 있습니다.

빛이 오면 어둠은 사라져

우리 인간은 실수할 때도 있고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런 문제 속에 빠져있지 않고 다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서서 우리 죄를 사하신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예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면 성령이 다시 우리 삶 속에 살아 일하십니다. 
선교학교에 있을 때 복음을 위해 한평생을 바치겠다고 하신 분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분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지금 여기에 있는 저는 하나님 앞에서 실수가 없고, 완벽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걸까요? 아닙니다. 저도 잘못하고 실수하고 어려움 앞에서 넘어질 수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제가 하나님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펴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해 빛 가운데로 하나님께 나아가 어둠에서 벗어났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어둠이 사라지면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마음이 흘러들어와 새로워지고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놀라운 삶을 살게 됩니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아간은 ‘외투 하나쯤, 금덩이 하나쯤은 괜찮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도 종종 아간과 같이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는데 그 사단이 주는 생각에 속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서 아간과 같은 마음을 짓밟아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구원받고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되면 순간 자신이 잘났다는 교만한 생각에 빠지게 되고 그로 인해 교회와 종들을 시들하게 여기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그 결과 오히려 하나님을 떠나 죄 속에 빠지게 됩니다. 구원을 받았다고 다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이 아니고 성경을 아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사단이 넣어주는 생각을 하나하나 받아들이면서
1년, 2년을 보내면 하나님을 향한 우리 믿음이 죽게 되고 세상에 빠져 결국 교회까지 떠나게 됩니다. 아간은 60만 이스라엘 사람 중에서 단 한 사람일 뿐이었지만 그 한 사람을 제하지 않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멀어져 어둠과 고통 속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피로 어둠에서 벗어나 빛 가운데로 나아오십시오. 우리가 잘못했을 때나 문제가 있을 때 교회의 종들과 교제하면서 예수님 피의 능력으로 회복되면 성령이 다시 힘 있게 역사하셔서 여러분을 어둠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입니다.

나아만 장관의 계집종처럼

여러분, 이제 새 마음을 가지고 빛 가운데 거하기를 바랍니다. 주님 앞에 손끝만큼의 어둠도 남겨두지 마시길 바랍니다. 어둠이 있으면 십자가의 피가 완벽하게 그 어둠을 해결하실 것을 믿고 빛 가운데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으로 갈 때 광야에서 물이 모자라면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하셨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고, 물이 가로막으면 그 물을 가르셨습니다. 그들에게 쉬지 않고 일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일하시는 분입니다. 하지만 사단은 끊임없이 작은 어둠을 우리 마음에 넣어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멀어지게 하려고 합니다.
열왕기하 5장을 보면서 나아만 군대장관 집에 포로로 잡혀 온 계집종의 마음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처음엔 ‘내가 왜 여기 잡혀 와야 해. 언제까지 여기서 종살이를 해야 해’ 하며 이 일을 문제와 근심거리로 여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계집종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새로운 생각을 넣어주었습니다. ‘우리 주인이 문둥병자네. 사마리아에 있는 엘리사 선지자에게 가면 병을 고칠 수 있는데.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이 집에 보내신 거구나. 장관님이 문둥병에서 낫고 구원을 받으면 그가 변하고 그의 군대가 변하고 그의 나라가 변하겠구나. 장관님께 선지자 이야기를 해야겠다.’ 똑같은 형편에 있었지만 사단이 주는 절망을 받아들이면 절망할 수밖에 없고 반대로 하나님을 향하면 모든 것이 소망으로 바뀌게 됩니다.

다시 믿음으로 달려나간다면

하나님이 계집종의 마음에서 두려움과 고통을 씻어내고 소망과 기쁨을 주신 것처럼 주님과 우리가 한마음이 되면 우리를 복되고 영광스러운 삶을 살도록 이끄십니다. 우리가 주님과 한마음이라면 어떤 질병이나 어떤 어려움, 어떤 문제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문제 앞에서 고통스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것 때문에 정죄 속에 빠져 있다가 예수님을 다시 만나면서 그 어둠에서 벗어나 정말 놀라운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만약 베드로가 돌이키지 않고 육에 머물렀다면 남은 한평생 고기잡이로, 세상에서 만나는 모든 문제를 자기가 해결하기 위해 수고하고 애쓰며 비참하게 살다가 죽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베드로처럼 실수하고 부족한 사람이지만 그때마다 주님 앞에 내놓고 예수님의 피를 힘입고 다시 믿음으로 달려간다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의 모든 것을 대신해 주셔서 참된 평안과 사랑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입니다. 예수님의 지혜가, 예수님의 능력이,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 속에 있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와 동행할 수 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성경은 우리에게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다시 옛 삶을 살지 말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서 복음을 위해 삽시다.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우리 속에 있는 아간을 제할 때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우리의 어두운 생각을 그냥 두지 말고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서 그 어둠에서 벗어나십시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 속에 살아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당신에게 나아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새 힘을 주시고 믿음을 주시고 감사와 기쁨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당신을 나타내시기를 원하십니다.
더 이상 사단이 넣어주는 ‘나는 부족해. 믿음이 없어. 구원받았다 해도 다들 이렇게 살던데 뭐. 그냥 되는 대로 대충 살자’라는 생각에 속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 나아가면 내게 새 힘을 주시겠구나, 기쁨을 주시겠구나, 이 문제를 해결하시겠구나’ 하며 하나님께 나아가 영광된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 2020. 10. 18. 주일 오전 예배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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