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義가 아닌 예수님의 義로 사는 믿음의 삶
상태바
내 義가 아닌 예수님의 義로 사는 믿음의 삶
2005. 2. 13 주일설교 요약 - 37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5.04.1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야곱’과 ‘에서’

한번은 창세기의 야곱과 에서에 관한 이야기를 읽었어요. 이삭이 나이 많아 눈이 어두워졌을 때에 맏아들 에서를 불러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이제 늙어 어느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노니 그런즉 네 기구 전통과 활을 가지고 들에 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나의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다가 먹게 하여 나로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에서는 사냥하는데 자신이 있잖아요. 얼른 활을 들고 달려나가서 열심히 사냥을 했어요.
야곱의 어머니가 야곱에게 “네 부친이 네 형 에서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내가 들으니 이르시기를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가져다가 별미를 만들어 나로 먹게 하여 죽기 전에 여호와 앞에서 네게 축복하게 하라 하셨으니 그런즉 내 아들아 내 말을 좇아 내가 네게 명하는대로 염소떼에 가서 거기서 염소의 좋은 새끼를 내게로 가져오면 내가 그것으로 네 부친을 위하여 그 즐기시는 별미를 만들리니 네가 그것을 가져 네 부친께 드려서 그로 죽으시기 전에 네게 축복하기 위하여 잡수시게 하라”(창27:1~10) 야곱이 염소 한 마리를 끌고 오니까 어머니가 금방 가서 요리를 하자 이삭이 먹고 야곱에게는 복을 주고 에서에게는 복을 주지 않았습니다.

저주받은 ‘에서’

그 성경을 읽다보니 ‘하나님, 열심히 아버지 말씀을 따라 사냥해서 별미를 가져온 자는 저주를 받고 아버지 말씀대로 안 하고 놀다가 염소 한 마리 가져와서 복을 받는 이런 이야기를 성경에 써 놓으면 어떻게 교육이 되겠습니까? 누가 열심히 일하겠습니까? 누가 아버지 말씀을 순종하겠습니까? 모두 야곱처럼 복 받으려고 하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창세기 27장을 여러 번 펴서 읽어 보았습니다. 읽어보면 읽어 볼수록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관념에는 열심히 일한 에서가 복을 받아야지요. 제가 진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마지막에 아버지가 에서에게 하는 말이 “너의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뜨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뜰 것이며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버리리라.”(창 27:39~40)라는 대목입니다.
에서는 사냥을 잘 하는 능숙한 사냥꾼이었어요. 아버지를 기쁘게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는 누구의 도움 없이 자기 스스로 사냥을 하고 요리를 해서 아버지께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데 결국, 에서는 저주를 받았고, 야곱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그림자, 리브가

저는 성경을 계속 읽다가 창세기 27장의 이 이야기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싶어하는 중요한 마음이 표현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에서처럼 내가 잘한 걸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오면 항상 저주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야곱은 어떻게 축복을 받습니까? 그는 아버지 앞에 나갈 자신이 없었습니다.
“내 형 에서는 털사람이요 나는 매끈매끈한 사람인즉 아버지께서 나를 만지실찐대 내가 아버지께 속이는 자로 뵈일찌라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하나이다”(창 27:11~12) 그는 자신을 볼 때 어느 면으로나 아버지 앞에 나와서 복을 받을 수 없는 인간임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어머니 리브가를 힘입어서, 어머니에 의해서 복을 받는 과정을 볼 수 있는데 이 어머니 리브가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라는 거지요.
성경은 우리에게 내가 열심히 노력하거나 잘해서, 십계명 지켜서 복을 받으려고 나오면 저주를 받지만 나의 모든 걸 부인하고 예수님을 힘입어서 나오면 복을 받는다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신앙이 안되는 이유

여러분 똑같은 파인애플이라도 그 맛이 지역에 따라 다릅니다. 과일의 맛은 기후와 토질 등 모든 자연환경이 종합되어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똑같은 씨라도 어떤 지역에 뿌려지느냐에 따라 그 맛이 다르듯 똑같은 사람이라도 어떤 방식의 신앙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달라집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신앙이 안 되는 이유는 신앙의 방식을 잘못 선택하고는 무조건 열심히 노력하고, 충성하고, 애쓰기 때문입니다. 시편 14편에는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시 14:2~3)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대로 신앙을 배우면

자동차 운전을 전혀 못하는 사람이 6개월 정도만 마음먹고 배우면 운전할 수 있잖아요. 머리 좋고 순발력 있는 사람은 며칠만 배워도 할 수 있습니다. 운전을 배우는 것보다 믿음을 배우는 것은 훨씬 더 쉽습니다. 운전하는 것은 기계이고 눈에 보이기 때문에 이해가 잘 됩니다.
신앙이라는 것도 막연하게 생각할 때 굉장히 어렵습니다. 처음부터 길을 잘못 들어섰기 때문에 아무리 해봐도 안됩니다. 그러나 약간 막연해 보이지만 제대로 신앙을 배우면 신앙보다 더 정확한 게 없습니다. 다른 건 다 자신 있다 해도 신앙하는 것에 자신 있다는 사람을 저는 아직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면 정말 신앙은 할 수 없도록 만들어진 것입니까? 성경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엔 모두 불합격

우리 교회에서 제일 착하고 의로운 사람이 한 사람 있다고 합시다. 그 사람이 자기가 행한 착한 것을 다 들고 하나님 앞에 나갔을 때에 불합격이면 여러분은 합격입니까? 불합격입니까? 네, 불합격이지요. 우리가 행하는 열심과 선은 우리가 볼 때 대단해 보이고 괜찮아 보여도 하나님의 기준에는 사람의 선과 의, 거룩함이 불합격입니다. 아무리 성실하게, 진실되게 잘해도 여러분이 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 앞에 다 불합격입니다. 하나님 보실 때 인정할 수 있고 합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분, 예수 그리스도가 하신 일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하나님 앞에 나오는 두 가지 길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율법을 주셨는데 그 율법을 완벽하게 지켜서 하나님 앞에 나오는 길이 하나 있어요. 또 다른 길은 죄를 짓고 악해서 율법을 지키지 못하니까 예수님의 의를 힘입어서 나오는 길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율법을 잘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실제로 자기가 잘해서 구원을 받는 쪽으로 마음이 흘러 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의를 힘입는 이 길은 자기에겐 소망이 없고 안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만이 예수님 앞에 와서 예수님이 행하신 그 의를 얻어 가지고 갑니다.

예수님을 의지하는 사람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의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고 자기가 의를 행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열심히 살려고 하지만 안 되기 때문에 결국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27장에 야곱과 에서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에서가 열심히 아버지 말씀대로 사냥을 해서 별미를 만들어 아버지 앞에 와서는 분명히 축복을 받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저주를 받았습니다. 반대로 야곱은 아버지께 복을 받을 조건이 하나도 없지만 어머니 리브가가 해주는 그대로 나가니까 복을 받더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열심히 율법을 지키고 성실하게 행해서 하나님께 복을 받으려고 하면, 나는 저주를 받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이기 때문에 33년 동안 죄를 범치 않고 사신 예수님의 의를 내 것으로 받아들여 그것을 힘입어 나가는 사람은 복을 받는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설명해 주는 것이지요.

지킬 수 없는 율법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의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롬 9:30~32) 자, 여기에서 이스라엘은 의의 법을 좇아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십계명을 다 지키겠다고 했는데 한 명도 완벽하게 지키지 못했어요. 그러면 지키지 못한 것이지요. 예수님이 말씀하셨어요.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 5:27~28) 예수님의 기준에는 여자를 보고 간음을 하지 않아도 음욕을 품으면 간음한 것이 되니까 이미 그 법은 어겼다는 겁니다. 지키지 못했다는 거지요. 그 법을 어느 정도 지키다가 안 되면 포기하고 다른 길을 얻어야 하는데 우리는 미련하게 계속 지키려고 합니다.

문제는 예수님께 맡기고

여러분 냉정하게 한번 생각을 해봅시다. 신명기 28장은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면 모든 것에서 복을 받지만 그 중에 하나라도 그릇 범하여 지키지 아니하면 반대로 모든 것에서 저주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여러분을 비추면 여러분들은 저주에 해당됩니까? 복에 해당 됩니까? 내가 말씀대로 다 지켜 행하려고 한다면 저주에 해당됩니다. 에서가 왜 저주를 받았습니까? 아버지 말씀대로 행하려고 하다가 저주를 받은 겁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해야 합니다. 거만하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척 하지 말라는 거예요. 사람들이 사탄에게 속아요. 그래서 사람들은 성경책을 펴놓고 읽으려고 하지 않아요. ‘그냥 착하게 살면 되고 율법 지키면 되겠지.’ 라는 생각에 속아서 잘하려고 하기 때문에 신앙이 안 되는 겁니다.
여러분은 잘 못하기 때문에 여러분의 문제를 예수님이 해결하도록 맡기는 것이 신앙입니다. 나는 율법을 지킬 수 없고 의롭지 못하니까 예수님의 의를 내가 얻고, 내가 범한 죄의 짐을 예수님에게 맡기는 것이 구원입니다. 그런데 어리석게도 참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자기가 열심히 무엇을 해서 구원을 얻으려고, 열심히 노력해서 은혜를 입으려고 합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는 義

사도바울도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의라고 했습니다.
자, 여러분이 행하는 선 말고, 여러분이 행한 그 의 말고, 예수님이 행한 걸 가져가야 하나님이 받으신다는 겁니다. 여러분이 열심히 노력한 것을 가지고 가면, 하나님은 받지 않으십니다. 이제 여러분이 잘 한 것이나 못한 것을 다 버리고 예수님이 주신 그 의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서면 언제든지 당당할 것입니다.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롬 10:1~3)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셔서, 예수님의 의를 우리에게 다 주셔서 우리를 의롭게 한 것을 모르고 내가 율법을 지키고 죄를 안 지어서 의롭게 되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그것은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고 거부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예수님이 33년 동안 한번도 죄를 짓지 않고 깨끗하고 거룩하게 산 그 의를 값없이 주셨습니다. 내 의가 아닌 예수님의 의가 있는데,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 드리려고 하지 않고 착한 일을 해서 의롭게 되려고 한다면, 예수님을 거부하는 일밖에 되지 않습니다. 우리 속에 선이 없는 걸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나를 거룩하게 한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드리는 것이 참된 믿음이고 그렇게 살 때 여러분 속에 살아계신 하나님이 능력으로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이 우리 형제자매들 모두의 삶 속에 일하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래서 가정이나 직장, 그리고 여러분의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아름답게 되어 힘있게 하나님을 나타내고, 내 의가 아닌 하나님의 것으로 담대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 2005. 2. 13 주일설교 요약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