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다윗이 골리앗 장군을 이길 수 있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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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다윗이 골리앗 장군을 이길 수 있었던 이유
[사무엘상 17장 41절 ~ 54절] 2020. 9. 6. 주일 오전 예배 설교 -  829 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20.09.11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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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온라인 예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스크린에 비친 여러분의 얼굴을 보니 너무나 반갑습니다. 화면에 가족이 함께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니 더 그립습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런 일을 허락하시는지 잘 모르겠지만 온라인으로라도 이렇게 예배드릴 수 있는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만질 수는 없지만 믿음으로 행하면, 놀랍게도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살아서 일하시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으면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을 이루어주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살아서 우리를 돕고 지키시며 모든 죄를 기억치 않는다는 것과 우리 마음속에 말씀이 자리 잡으면 하나님이 말씀대로 우리 삶 속에서 힘있게 일하신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여름성경학교를 진행하며

저는 1968년 6월 군(軍) 제대 후 복음을 전하고 싶어서 어린이 전도팀을 만들었습니다. 전국의 5개 교회에서 어린이 여름성경학교를 했는데 경북 군위군 소보면에 있는 복성동교회, 경기도 평택시 진위면 사후동교회, 남사중학교에 있는 남사교회, 외임교회, 발안교회입니다. 성경학교를 하면서 여러 가지 많은 어려움과 문제가 있었지만 하나님이 하나하나 도우시고 해결해 주시는 걸 봤습니다. 그 당시 세 번째 성경학교를 진행했던 남사교회에서 네 번째 장소 외임까지 갔던 일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남사에서 주일학교 시상식과 다과 모임을 마치니 밤 12시가 되어 끝났습니다. 이튿날 아침부터 외임교회에서 성경학교를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한밤중이지만 길을 나서야 했습니다. 
형제 둘과 자매 셋, 총 다섯 명이 이동하는데 차도 없고 장마철이라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옷 보따리와 가방을 들고 길을 안내하는 동네 청년과 함께 걸어갔습니다. 그 청년은 4년 전에 한 번 외임에 다녀온 것이 다 였기 때문에 몇 번이나 길을 잘못 들어 다시 돌아 나왔습니다. 

한밤중에 길에서 기도를

저는 길에 선 채 기도를 하자고 했습니다. “하나님, 우리를 인도하셔서 외임까지 잘 가게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하던 중 문득 ‘우리가 지금 외임으로 가면 새벽 두세 시쯤 도착하는데, 그 밤중에 전도사님 댁을 어떻게 찾아가지?’ 하며 걱정스러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다시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외임에 복음을 전하러 가는데, 누군가 우리를 마중 나오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형제자매들은 ‘이 새벽에 누가 마중 나온다는 게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라고 생각하는지 모두 조용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약속을 삶에서 경험하는 신앙생활을 하고 싶었는데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면 하나님이 이루어 주시지 않을 일이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불가능해 보이지만

우리는 새벽 세 시쯤 마을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달은 떴지만 구름이 껴서 달빛이 아주 희미한 가운데 부슬비도 내렸습니다. 그때 청년 세 명이 정자나무 아래 앉아 있다가 새벽에 낯선 사람들이 짐을 들고 마을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중 한 청년이 고개를 내밀고 우리를 쳐다보았습니다. 그 청년이 우리를 안내하는 사람과 잘 알고 있는지 “안녕하십니까?” 인사를 하고 “어떻게 이 밤중에 오냐?”며 우리 짐을 받아들고 전도사님 댁으로 갔습니다. 제가 새벽 세 시에 정자나무 아래에 청년들이 왜 앉아 있는지 궁금해서 “형제님, 이 밤중에 왜 이곳에 나와 있게 되신 거예요?”라고 물었습니다. 사실 그들은 외임교회 청년들로 교회의 노인 한 분이 곧 세상을 떠나실 것 같아서 어제 저녁 예배를 마친 후 모여 할아버지 임종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장마철이라 너무 덥고 갑갑해서 그들이 잠깐 바람을 쐬러 나왔다가 우리를 만난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를 마중 나오도록 기도에 응답해 주셨구나!’ 하며 무척 감사했습니다. 
한편 걱정되었던 것은 성경학교 기간에 장례를 치르게 된다면 교회가 작아서 몇 분 안 되는 교회 사람들이 다 초상집에 가버려 성경학교 분위기가 흐려질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성경학교 기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지 않게 해 주십시오’라고 간절히 기도했는데, 우리가 성경학교를 마칠 때까지 정말 할아버지는 돌아가시지 않았습니다. 

서로 마음이 하나가 되면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마음을 만드셨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마음과 우리 마음이 하나가 되면 서로 마음이 흐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볼 때 불가능한 일도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우리 삶에 일하시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 감동적인 좋은 소리를 하거나 가능한 것을 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불가능한 일이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으로 구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일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구하자 하나님은 처음에 사울을 왕으로 택했다가 사울을 폐하고 다윗을 왕으로 세웠습니다. 사도행전 13장을 보면 “그 후에 저희가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행 13:22)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처음에 어떤 생각을 했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말씀 편으로 마음의 방향을 맞추면 하나님과 우리 마음이 하나가 되어 서로 마음이 흐르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있든지 하나님의 능력, 기쁨, 지혜, 평안이 우리 마음 속으로 들어오고 우리가 그 일을 처리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자연히 해결해 주십니다.

작은 계집아이의 믿음

여러분, 열왕기하 5장을 보면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의 집에는 사마리아에서 포로로 잡혀온 작은 계집아이가 있었습니다.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은 높은 지위와 권세, 부를 갖춘 사람이지만 문둥병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작은 계집아이는 나아만이 문둥병자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다가 ‘우리 주인이 문둥병에 걸렸는데, 사마리아에 계신 엘리사 선지자를 만난다면 금방 나을 거야.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이곳에 보내셨구나’ 하며 사마리아 선지자 엘리사와 연결시켰습니다.
죄인을 구원하는 일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죄를 지은 죄인과 죄를 사하는 예수님이 연결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우리 마음이 연결되면 놀랍게도 서로 마음이 흘러서 예수님의 능력, 사랑, 지혜가 우리에게 흘러들어 오고 죄인인 우리가 죄 사함을 받아 의롭고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선지자 엘리사는 세상적으로 아무런 지위나 돈도 없는 하나님의 종이지만 하나님과 마음이 흘렀습니다. 그가 모시는 하나님은 문둥병을 능히 고칠 수 있습니다. 작은 계집아이는 사마리아 선지자 엘리사와 문둥병자 나아만을 연결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세계 안에서

어느 날 작은 계집아이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조용히 말을 건넸습니다. “사모님, 제 이야기를 들으시면 놀라실 겁니다.” “무슨 일이야?” “주인님이 문둥병이시잖아요?” “그래. 그런데 왜?” “사모님, 우리나라에 선지자 엘리사가 계세요. 그분을 만나면 주인님의 문둥병이 단번에 나을 수 있어요.” “뭐라고? 그 선지자가 문둥병을 고친다고?” “그 선지자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나아만의 아내는 그 계집아이의 마음을 받아들였고 남편 나아만에게 그 마음을 전달했습니다. 그 후 나아만이 사마리아에 내려가서 엘리사를 만나고 문둥병에서 나아 아람으로 돌아옵니다.
신앙이란 마음의 세계에서 이루어지는데 그 마음은 마치 전파와 같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휴대전화기 안에는 발진기가 있는데 거기서 통신을 하기 위한 전파를 만듭니다. 휴대전화기는 크리스탈(수정) 발진기를 사용하는데 수정을 얇게 잘라 양쪽에 전류를 흐르게 하면 전파가 생성되고 주파수를 조정하는 장치를 통해 원하는 주파수로 변환시킵니다. 그 전파에 제 음성도 싣고 영상도 실어 기지국으로 보냅니다. 기지국에서 우리가 가진 휴대전화 신호를 받으면 상대방의 휴대전화나 TV, 컴퓨터로 보내게 됩니다. 지금 모니터나 휴대전화기로 제 얼굴을 보고 계시죠? 여러분과 저는 전파로 연결되었는데, 하나님과 우리는 마음으로 연결됩니다. 

믿음이란 말씀을 믿는 것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우리에게 가능해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불가능해 보이는 것도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교회를 다니며 하나님이 전능하다는 것을 아는 데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우리 속에 당신의 능력을 나타내고 약속대로 일하시길 원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전능한 하나님을 믿으면 가능해 보이는 일은 물론이거니와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하나님이 이루어 주시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게 되면서 하나님이 능력으로 우리에게 일하십니다.

골리앗을 물리친 다윗

여러분, 사무엘상 17장에서 소년 다윗은 믿음으로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물리쳤습니다. “그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 신장은 여섯 규빗 한 뼘이요. 머리에는 놋 투구를 썼고 몸에는 어린갑을 입었으니 그 갑옷의 중수가 놋 오천 세겔이며. 그 다리에는 놋 경갑을 쳤고 어깨 사이에는 놋 단창을 메었으니. 그 창 자루는 베틀 채 같고 창날은 철 육백 세겔이며 방패 든 자는 앞서 행하더라”(삼상 17:4~7) 골리앗의 키는 여섯 규빗 한 뼘이라고 하는데 1규빗이 45㎝이니까 6규빗 한 뼘이면 약 3m입니다. 창자루가 베틀 채 같다고 했는데 한번 창을 휘두르면 사람들을 다 죽일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처음부터 골리앗을 물리칠 수 있던 사람이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삼상 17:37) 다윗이 그동안 하나님의 도움을 경험하고 골리앗을 만났을 때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나아가 무찔렀듯이 우리의 신앙도 그렇게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삶에 어려움이 닥쳤을 때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삶에 어려움이 닥쳤을 때 인간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이 도우실 걸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서 서로 마음이 흐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있는 평안, 지혜, 거룩함이 우리 마음속으로 흘러들어 와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능력을 나타내시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믿었던 것처럼 아무리 죄인이라도 하나님이 우리 죄를 씻은 걸 믿으면 하나님과 마음이 연결되어서 하나님의 의가 흘러들어와 의인이 되고,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지혜가 그의 마음으로 흘러들어가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누구를 가장 사랑하십니까? 바로 구원받은 우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문제를 도와주시길 원하십니다. 저는 제 삶 속에서 불가능한 일들을 많이 만났는데 그때마다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면서 제 한계를 넘어서 계속 하나님 편에서 일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불행으로 이끄는 악한 영을 이길 수 없지만 전능한 하나님은 악한 영을 이기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가 되면 우리도 악한 영을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악한 영을 이길 수 있도록 훈련하기 위하여 우리 삶 속에서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한 일을 당하게 합니다. 이제 인간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만나면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이 그 일을 도우시고 해결해 주실 걸 정확히 믿으세요.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능력으로 일하시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요한1서 1장 9절의 의미

선교회에서는 9월 한 달 동안 각국의 유명 인사들이나 기독교 교단 대표들과 영상 면담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에스와티니 국왕 비서실장과 현직 장관, 기독교 지도자들을 만났습니다. 대부분의 교회 지도자들은 성경 요한1서 1장 9절 말씀에 대해 궁금해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9) 이 말씀처럼 우리가 자백하면 주님이 죄를 사하시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조금 더 자세히 성경을 살펴보면 그 뜻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의인이란 단어가 수없이 많이 나오는데 크게 세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선 로마서 3장에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10)라는 말씀을 보면 의인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그 말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창세기 6장에서 “노아는 의인이요”(창 6:9), 로마서 1장에서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2), 야고보서 5장에서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약 5:16) 하며 성경 여러 곳에서 의인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죄인에서 의인이 되는 과정이 있습니다. 로마서 3장 23절에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하며 우리 모두가 죄인이라고 합니다. 여기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없고 죄인만 있습니다. 그러나 24절에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하며 예수 그리스도가 등장합니다. 우리가 더러운 죄인인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은 사실을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의가 들어와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죄를 사하는 것은

히브리서 9장 22절에는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 죽음을 지불하지 않고는 절대 죄가 사해 지지 않으며 우리 죄가 완전히 씻어지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어야 합니다. 만일 내가 죄를 깨닫고 주님 앞에 회개해서 죄가 씻어진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필요가 없습니다. 정확히 말해 예수님의 피가 죄를 사하는 것이지 우리의 회개가 죄를 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1서 1장 7절을 보면,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하며 우리가 죄를 깨달았기 때문에 죄가 사해졌다가 아니라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고백하는 것만으로는 죄가 씻어지지 않습니다. 우리 죄를 사하는 것의 근본은 예수님의 피입니다.

레위기 4장의 속죄제사

레위기 4장에는 속죄 제사에 관한 말씀이 있습니다. “만일 평민의 하나가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다가. 그 범한 죄에 깨우침을 받거든”(레 4:27) 하며 죄 사함을 받으려면 첫째, 죄를 지어야 하고 둘째, 자기가 죄를 지은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죄를 짓고 깨달아서 뉘우치고 고백한다고 죄가 씻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죄를 사하는 것은 바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피입니다. 처음에는 우리가 죄인인 것을 깨닫고,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그다음 예수님의 피가 우리 마음 판에 뿌려지고 우리 죄가 사해진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서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하심을 믿어야 

하나님은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히 10:16)라고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면서 믿었던 자기 생각을 버리고 말씀을 우리 마음에 받아들이면 예수님과 한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그 마음속에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여러분, 사단은 이 세상에 존재합니다. 우리는 사단에게 속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는데 그때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단을 이길 수 있습니다. 다윗은 혼자 골리앗을 이길 수 없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고 나아가 골리앗을 이겼습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이 여러분의 죄를 사하신 것을 믿고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으면 하나님과 한마음이 됩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능력을 나타내셔서 사단의 모든 역사를 이기고 복된 삶을 살 수 있게 하실 줄 믿습니다. 
- 2020. 9. 6. 주일 오전 예배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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