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속죄(Eternal Redemption)의 참 의미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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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속죄(Eternal Redemption)의 참 의미는 무엇인가?
[로마서 3장 10절 ~ 31절] 2020. 8. 23. 주일 오전 예배 설교 -  827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20.08.28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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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주일예배를 드리며

오늘 아침 교회 예배당이 텅 비어 있어 조금 섭섭했는데 제 앞에 있는 대형 스크린으로 예배에 참석한 여러분의 얼굴을 보며 온라인 주일예배를 드릴 수 있어 너무나 감사합니다. 우리는 정부의 코로나19 확산 방지 조치에 협조하기 위해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감염자들의 사망률이 높지 않지만 외국은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가 많아서 위험한 상황입니다. 지구의 인류 역사 속에는 이런 재앙들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어보면 그런 재앙들이 저주라기보다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낮춰서 하나님께 돌이켰을 때 축복으로 바꾸시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어려움이 많지만 앞으로 하나님이 축복으로 바꾸신다고 믿으시고 기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가족들 가운데 코로나19 확진자가 있다면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을 가지셔서 예수님의 힘으로 건강을 되찾게 되길 바랍니다. 어서 빨리 이 코로나가 끝나 교회에서 여러분과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

여러분, 열왕기하 5장을 보면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의 집에는 사마리아에서 포로로 잡혀온 작은 계집아이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을 들었습니다. 종이 된 계집아이는 문둥병에 걸린 나아만의 집에서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종살이를 합니다. 그 계집아이는 ‘내가 하나님을 믿는데 왜 이렇게 포로로 잡혀 왔지? 하나님을 믿어서 유익한 게 뭐야? 나는 언제 집으로 돌아가서 가족들을 만날까?’ 하며 절망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을 것입니다. 
어느 날 그 계집아이가 빨래하다가 주인 나아만의 속옷에 고름이 묻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우리 주인 나아만이 문둥병자네. 나도 문둥병에 걸릴 수 있으니 조심해야겠다. 아이고, 내 팔자야. 어쩌다가 문둥이 집에 와서 종살이해야 해?’ 하며 날마다 가족들이 그리워서 눈물을 흘리며 잠들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계집아이는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했습니다. ‘우리 주인이 문둥병에 걸렸는데, 사마리아에 계신 엘리사 선지자를 만난다면 금방 나을 거야. 그러면 이 집의 근심이 끝나고 기쁨으로 가득 찰 거야. 그래, 그거야.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이곳에 보내셨구나’ 하며 그의 마음이 절망에서 소망으로 바뀌었습니다. 

작은 계집아이의 마음

그 계집아이는 ‘하나님을 믿는 내가 이곳에 포로로 잡혀 와야 할 이유가 있었구나. 만일 우리 주인이 문둥병에서 나으면 너무나 기뻐서 부하들에게 복음을 전하시겠지. 그러면서 하나님을 믿고 거듭나야 진급시켜 준다고 하실 거야. 하나님, 우리 주인이나 사모님이 제 이야기를 잘 듣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면서 날마다 소망이 생겼습니다. 
어느 날 그 집에 나아만의 아내와 계집아이가 단둘이 있었습니다. 그 계집아이는 조용히 말을 건넸습니다. “사모님, 오늘 이야기 좀 해도 될까요? 저는 이 집에 와서 참 즐거워요.” “너는 포로로 잡혀 와서 뭐가 그리 즐거우니?” “사모님이 제 이야기를 들으시면 놀라실 겁니다.” “무슨 일이야?” “주인님이 문둥병이시잖아요?” “그래. 그런데 왜?” “사모님, 우리나라에 선지자 엘리사가 계세요. 그분을 만나면 주인님의 문둥병이 단번에 나을 수 있어요.” “뭐라고? 지금까지 많은 의사를 만났지만 고칠 수 없었는데. 그 선지자가 문둥병을 고친 적이 있니?” “문둥병을 고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죽은 사람도 살리고 많은 병을 고치셨어요. 틀림없이 나을 거예요.” “네가 어떻게 그리 장담하니?” “사모님, 만일 우리 주인님이 사마리아에 가서 문둥병이 낫지 않으면 제가 이곳에서 얼마나 어려움을 겪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은 분명히 낫기 때문입니다.”

문둥병에서 나은 후

나아만의 아내는 그 계집아이가 평소에도 남다르다고 느꼈는데 너무나 담대하게 얘기하는 것을 보고 자신은 갖지 못한 특별한 마음의 세계를 발견했습니다. 그 후 나아만이 사마리아에 내려갔고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에는 그가 문둥병에서 나아 아람으로 돌아왔습니다. 나아만은 기쁨에 넘쳐서 병거의 말을 채찍질해 달려오다가 집 앞에 이르러 뛰어내렸습니다. “여보, 내가 다 나았어. 여기 봐. 다 나았지?” 나아만의 아내가 “이렇게 기쁜 날이 올 수 있을까?” 하며 남편을 붙들고 웃다가 울다가 했습니다. 
여러분, 그 계집아이의 이름을 ‘숙이’라고 합시다. 제가 상상한 이야기입니다. 나아만 군대장관은 계집아이에게 말합니다. “숙아, 오늘부터 넌 내 딸이야.” “예, 고맙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행복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나아만이 작은 계집아이를 불렀습니다. “숙아.” “예, 아빠.” “의논할 일이 있다.” “뭔데요?” “우리나라 부사령관의 아들이 있어. 지난번 내 생일에 부사령관과 같이 온 그 총각이 널 보고 한눈에 반한 것 같아. 결혼 신청을 했는데 너는 어떠니?” “아빠, 부끄러워요.” 이제 그들이 결혼해 신혼여행으로 마차를 타고 사마리아로 갑니다. 친정아버지는 그때까지도 ‘아이고, 우리 딸. 포로로 가서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겠다’ 하며 근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흰 마차가 그 집으로 들어오고 젊은 남녀가 내렸습니다. “아빠!” “누구세요?” “아빠, 저 숙이예요.” 정말 너무나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전기는 전선을 통해 흐르고

여러분, 저는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죄를 해결하지 못한 채 그냥 교회를 다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이 모든 죄를 씻었다는 말씀을 믿은 뒤부터 예전에 없던 예수님의 마음이 제 마음으로 들어와 소망과 기쁨, 지혜가 생기면서 제 삶이 달라지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전기가 집에 들어오면 세탁기나 냉장고도 돌리고, TV도 켤 수 있습니다. 그 전기는 부잣집이든 가난한 집이든 그 집에 착한 사람이 살든지 악한 사람이 살든지 전선만 연결하면 흐릅니다. 전선이 연결되면 전기가 흘러 냉장고나 세탁기를 돌리듯 예수님이 우리 마음속에 들어와 일하시는 조건도  우리 마음과 예수님의 마음이 연결되어야 합니다. 

실로암 못으로 간 소경

요한복음 9장을 보면, 날 때부터 눈먼 소경이 있었습니다. 그는 매일 아침부터 거리에 나가서 구걸해 먹고살다가 어느 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이 그 소경의 눈에 진흙을 바르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했습니다. 이 소경은 지금까지 구걸해서 생활했는데 예수님은 돈을 주시지 않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그 소경의 마음속에서는 ‘아니야. 난, 오늘 돈을 벌어야 해. 구걸해야 해’ 하는 자기 생각과 실로암 못으로 가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서로 싸웠습니다. 만일 그 소경이 ‘에이, 뭘 실로암에 가. 내 얼굴이 얼마나 더러운지 모르지만 나중에 씻으면 되지’라고 생각한다면 자기 생각을 따라간 것입니다. 반대로 구걸하는 일을 중단하고 실로암 못으로 간다면 그것은 자기 생각이 아닌 예수님의 말씀을 믿은 것입니다. 
성경 속에는 예수님의 마음이 있는데 다른 악한 영이 우리 마음을 예수님과 반대편으로 끌고 가서 타락하고 범죄를 하도록 합니다. 그러나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우리 가운데 누구든지 어떤 죄를 지었더라도 예수님의 마음과 연결된다면 예수님의 마음속에 있는 평화, 기쁨, 지혜, 사랑의 힘이 우리 마음속으로 흘러들어 와서 예수님처럼 살게 됩니다. 

어느 날 성경을 읽으면서

저는 철모를 때부터 교회를 다니기 시작해서 19세까지 성경 읽고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일에 힘썼지만 예수님의 마음과 제 마음에 대해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제가 8세이던 1951년에 어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신 뒤부터 19세 되던 1962년까지 11년 동안 저는 한번도 행복했던 적이 없었습니다. 집이 가난해서 늘 배고픔을 겪다가 남의 밭에 들어가 밀을 꺾어다 구워 먹고, 감자나 땅콩을 캐먹기도 했습니다. 교회를 다니니까 그게 죄인 줄 더 잘 알게 되면서 ‘나는 지옥 간다’라고 생각하며 아무 소망 없이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경을 읽으면서 예수님의 피로 내 죄가 씻어졌다는 말씀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내 죄를 위해 죽으셨다면 내 죄가 사해진 거야’ 하며 말씀이 믿어졌습니다. 그때부터 제가 성경을 읽기 시작하여 신구약 전체를 약 30번 정도 읽었을 때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해서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셨다는 사실과 어떻게 우리 죄가 사해졌는지를 성경에서 정확하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오늘 읽은 로마서 3장에서 하나님은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 3:10~1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B.C.1491년에 모세가 시내 산에서 율법을 받았습니다. 출애굽기 19장에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 19:5~6)고 말씀하셨습니다. 신명기 28장에서도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신 28:1~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만일 율법을 하나라도 지키지 못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하셨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모두 율법을 어겼습니다.

우리가 행하는 선(善)의 실체

로마서 3장 12절에서 하나님은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인간의 기준으로 보면, 선을 행하고 하나님을 열심히 믿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실 때 선한 사람이 하나도 없고 전부 저주와 멸망 아래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율법을 기준으로 인간 행위를 판단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미국 시카고에서 집회를 마치고 돌아오려는데 액세서리 판매를 하는 자매님이 제게 목걸이 한 뭉치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저는 항상 일정이 바빠서 세관에 신고해야 하는 물건은 가지고 다니지 않습니다. 그날도 그 자매님이 주신 것을 빼놓고 왔는데 누가 다시 제 가방에 넣었는지 공항에서 나오다가 세관에 걸렸습니다. 난처한 상황이었는데 제가 세관원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이것은 금이 아니라 도금한 모조품입니다. 혹시 칼이 있습니까?” 세관원이 칼을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목걸이를 긁어 보라고 했습니다. 세관원이 그 목걸이를 긁자 금방 다른 금속이 나와서 그것을 보고 웃었습니다. 여러분, 순금이라면 아무리 긁어도 끝까지 금만 나와야 합니다. 하지만 긁었을 때 다른 금속이 나오면 그것은 가짜입니다. 우리가 행하는 선은 다 이와 같습니다. 만일 우리가 정말 선하다면 항상 선을 행해야 합니다. 선을 행하다가 얼마 후 미움과 악이 나온다면 그것은 선이 아닙니다. 

율법이 말하는 바는

여러분, ‘간음하지 말라’는 법이 먼저 있었습니까? 사람이 간음해서 법이 생겼습니까? 사람이 먼저 간음했기 때문에 ‘간음하지 말라’는 율법이 생겼습니다. 마찬가지로 “거짓말하지 마세요”라는 말은 사람이 먼저 거짓말했기 때문에 ‘거짓말하지 말라’는 법을 이야기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19~20) 하며 모든 인간은 앞으로 아무리 선하게 살아도 이미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고 율법을 지켜서 결코 의롭게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롬 3:21) 하며 인간이 율법을 지키는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의롭게 되는 길을 말씀하셨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자신이 율법을 잘 지켜서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인간은 이미 율법을 어기고 죄를 지었기 때문에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새 언약(New Covenant)

사실상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義)’는 율법을 다 지켜야 얻을 수 있는데 지구상에서 예수님 외에 단 한 명도 율법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없으므로 이제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 3:22) 즉 우리 죄를 위하여 우리가 뭘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서 예수님이 우리 죄의 벌을 다 받아 십자가에서 죽고 우리가 지은 모든 죄를 끝내버린 것입니다. 예레미야 31장에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중략)…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 31:32~34) 첫 번째 언약인 율법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어겨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새 언약을 만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행위와 전혀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는 방법입니다. 

영원한 속죄

구약시대의 속죄 제사는 양이나 염소의 피로 제사를 드립니다. 이는 시간계에서 죄를 사하는 제사이기 때문에 시간이 흘러서 다시 죄를 지으면, 과거로 지나간 속죄 제사가 현재 지은 내 죄를 사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매일 죄를 짓기 때문에 매일 제사를 지내서 제단의 피가 강물처럼 흐르고 제단에서 짐승 태우는 연기가 구름처럼 피어올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의 피를 가지고 ‘영원한 속죄(Eternal Redemption)’를 이루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이루신 영원한 속죄는 우리가 예수님께 죄를 고백할 때마다 “그래, 내가 죽어줄게” 하시며 십자가에서 죽고 우리 죄를 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영원히 씻지 못했다면 우리가 또 죄를 짓고 지옥 가는데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히 9:12) 하며 예수님은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단번에 우리 죄에 대해 영원한 속죄(Eternal Redemption)를 이루셨습니다. 

죄가 있는 사람은

여러분, 성경에서 예수님이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고 말씀하시는데 ‘나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죄인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말씀과 그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예수님과 한마음이 될 수가 없습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해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사 59:1-2)라는 말씀처럼 죄가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이 흐를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은 먼저 우리 죄를 사하는 일을 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믿으면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 생각을 다 버리고 말씀을 믿읍시다.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전 6:10~11) 이 말씀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성령께서 우리를 씻었고 거룩하게 했고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믿는 사람은 “내 죄가 씻어졌다. 거룩하다. 의롭다”고 말할 것입니다. 이 말씀을 안 믿는 사람은 “나는 죄인이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내가 볼 때 죄인이지만 ‘예수님이 의롭다면 의롭네’ 하며 말씀을 믿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생각과 다르지만 우리가 그 말씀을 믿으면 예수님과 한마음이 되고 우리에게 없던 지혜, 평화, 능력, 사랑이 생기면서 예수님을 닮게 될 것입니다. 
- 2020. 8. 23. 주일 오전 예배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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