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리아인 같은 우리에게 찾아 오신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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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아인 같은 우리에게 찾아 오신 주님 
[요한복음 4장 7절 ~ 30절] 2020. 8. 16. 주일 오전 예배 설교 -  826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20.08.21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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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리가 성경을 읽다 보면 때때로 답답함을 느낄 정도로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읽다가 성경 말씀 속에 있는 주님의 마음을 느낄 때는 그것만큼 행복하고 기쁜 일이 없습니다. 오늘 읽은 요한복음 4장을 보면, 사마리아 여자는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를 평범한 유대인 남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짐승처럼 여기고 상종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예전에 사마리아가 이스라엘의 수도였을 당시 수많은 전쟁을 치르는 동안 이방 민족과 이스라엘 사람이 섞여 혼혈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물가에 있다가 물을 길러 온 사마리아 여자를 만나 처음에는 그냥 물을 좀 달라는 평범한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사마리아 여자가 예수님에게 “당신은 유대인인데 어떻게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라고 말하면서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만일 네가 물 좀 달라고 하는 이가 누군지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고, 그가 네게 생수를 주었으리라.” “우물은 깊고 물 길을 그릇도 없는데 어디서 생수를 얻겠습니까?” 이렇게 그 여자와 예수님의 대화가 계속되다가 어느 시점에 와서 예수님이 정말 상상치 못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소설과 성경이 다른 점

제가 자주 이야기했지만 예전에 저는 소설을 좋아해서 소설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문학가가 소설을 쓸 때 등장인물의 감정을 글로 잘 묘사하면 독자는 감정이입이 되어 감동을 받습니다. 그렇게 작가가 아름답게 감정 표현을 하면 독자는 그 매력에 이끌려 소설을 읽게 됩니다. 하지만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이 다르기 때문에 성경은 소설과 다르게 진리만을 기록하고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아 다소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 속에서는 소설과 전혀 다른 새로운 마음의 세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대하면 감정이 아닌 예수님의 사랑, 지혜, 희생이 우리 마음에 들어오면서 ‘아, 이게 참 진리구나’ 하고 감동을 받게 됩니다.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요한복음 8장에서는 간음 중에 잡힌 여자가 예수님을 만납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그 여자를 예수님께 끌고 가서 말했습니다. “예수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 이런 여자를 돌로 치라고 말했습니다. 선생은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그들은 모두 “예수님이 돌로 치라. 또는 돌로 치지 마라”는 대답을 하실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이 상상할 수 없는 대답을 했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이 여자를 돌로 치라.” 지금까지 그들은 간음 중에 잡힌 여자의 죄만 생각했지, 자신의 죄는 생각하지 못했다가 예수님이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셨을 때 그제야 간음 중에 잡힌 여자의 죄만 보던 눈을 돌려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나도 죄가 있으면서 저 여자를 돌로 치려 했구나!’ 하며 부끄러워 하나둘 돌을 내려놓고 떠나고 그 자리에는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자만 남았습니다. 

감정없이 사실만을 기록

이렇게 성경은 감정 없이 사실만 기록한 책입니다. 저는 간음 중에 잡힌 여자의 오빠가 장관이거나 국회의원이라면 ‘저 여자를 살릴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말씀 한마디로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살리셨습니다. 간음 중에 잡힌 여자는 ‘아니, 저분은 어디서 저런 지혜가 나왔을까? 나는 절대로 살 수 없는 사람인데. 모두 나를 돌로 쳐 죽이려고 했는데. 저분은 나 같은 더러운 인간을 사랑하시는구나’ 하며 예수님의 마음을 느꼈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서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과 대화를 하며 다른 사람에게서 도저히 느낄 수 없는 마음의 세계를 보게 되었습니다. 성경에는 그림이나 설명이 없지만 성경 속에 흐르는 마음의 세계를 발견하고 예수님의 마음을 우리 마음속에 받아들이면 정말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브라질 방송국으로부터

지난번 대구에서 기자회견을 할 때 대구의 어느 한 언론사 기자가 제게 “목사님, 설교가 전 세계 94개국으로 방송되었는데 어느 나라 사람들이 목사님의 설교를 가장 심취해서 받아들였나요?”라고 질문했습니다. 저는 브라질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브라질 방송국은 제 설교가 방송된 뒤에 여러 번 저를 인터뷰했습니다. 지난주 토요일 새벽에는 방송국 인터뷰 담당자가 제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버지가 얼마 전에 우울증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만일 아버지가 박 목사님을 만났다면 돌아가시지 않으셨을 텐데’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박 목사님을 좀 더 알고 싶습니다.” 그러면서 제 삶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브라질 사람들이 제 설교에 심취한 이유를 저도 정확히 모르지만 예측해본다면 그동안 코로나19 확진자 발생률이 미국 다음으로 브라질이 높았습니다. 사실 한국에서는 코로나 확진자가 되어도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브라질에서는 참 많은 사람이 코로나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브라질 시민들이 죽음 앞에 서게 되고, 하나님을 간절히 찾던 중에 제가 전한 복음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입니다. 제 설교를 시청하던 시청자들의 댓글이 오천 개가 올라와 방송 관계자들이 놀라워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제 생전에 한 번도 상상치 않았던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 될 것 같습니다. 

만물보다 거짓된 것은 ‘마음’

몇 년 전에 제가 페르난도 루고 대통령과 함께 꽃마을을 방문해서 한 신부님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분의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악한 생각을 해본 적 없고, 초등학교 9살 때부터 학교에 싸간 도시락을 안 먹고 남들에게 다 나눠줬다고 했습니다. 저는 ‘세상에 이런 착한 분이 있을 수 있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루고 대통령께 “이분은 예수님을 믿을 필요가 전혀 없네요. 성경에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고 했는데 정말 악한 생각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을까요? 물론 모든 사람이 저와 같지는 않겠지만 믿어지지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루고 대통령은 “그게 왜 이상합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이 악한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요?” 하며 대통령과 이야기했습니다. 
여러분, 사실 우리 모두 악하지 않습니까? 우리 모두 거짓되지 않습니까? 우리 모두 더럽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저는 죄 사함 받기 전에는 ‘나는 지옥 간다. 나처럼 야비하고 나쁜 놈은 없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아무리 손꼽아 헤아려봐도 저는 잘난 것이나 선한 것, 깨끗한 것 중에 아무것도 가진 게 없고, 예수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조건이 전혀 없는데 예수님이 저를 구원하시고 당신의 사랑 안에 넣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저를 위해 피 흘리고 십자가에 달리셨기 때문에 예수님께 제 생명을 다 바쳐도 아깝지 않습니다. 

새로운 마음의 세계로

사마리아 여자는 우물가로 물  길러 왔다가 예수님이 그 여자에게 물을 좀 달라고 하자, 예수님을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질문했습니다. “당신은 유대인이잖아요. 어떻게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합니까?”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그 속에 영생토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니라.” 사마리아 여자가 “선생님, 세상에 물 한 번 마시면 목마르지 않는 그런 물이 어디 있어요. 농담하지 마세요. 저는 그 말 안 믿어요”라고 말해야 하는데 예수님과 대화가 계속되는 걸 보면 그 여자가 예수님의 말씀을 자기 마음에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사마리아 여자의 입장이 돼서 예수님과 대화를 해봤습니다. 저는 “예수님, 농담하지 마세요. 말도 안 돼요”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여자는 예수님의 말씀 속에 있는 자기가 갖지 못한 새로운 세계로 이끌려갔습니다. 그 여자는 현재 여섯 번째 남편과 살고 있었습니다. 여섯 번째 남자도 참 자기 남편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인생 속에서 실수와 어려움 등 많은 시련을 겪었고, 남들에게 멸시와 업신여김을 받았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는 보통 사람이 갖지 못한 예수님 마음의 세계에 맞닿을 정도로 깊은 마음을 가졌습니다. 

여러 번 이혼을 하면서

사마리아 여자는 그동안 여러 번 이혼하면서 ‘이번엔 이혼 안 하려고 했는데’ 하며 보통 사람들이 겪지 못한 고통을 겪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저분이라면 나를 다시는 목마르지 않게 하실 수 있겠구나’ 하며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어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자의 이야기를 보면서 정말 놀라웠습니다. 저는 19살 때 모든 일이 실패하면서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교회를 다녔지만 죄가 많았고 그 죄에서 벗어날 길을 알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 여자가 말한 그 깊은 마음의 세계 속에서 예수님을 만나진 않았습니다. 마음의 목마름 같은 것도 모르고 그저 죄 때문에 ‘예수님, 죄 사함만 좀 받았으면 좋겠습니다’라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모든 죄에서 벗어났는가

여러분, 대한민국의 기독교인 가운데 ‘예수님이 내 죄를 씻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실을 믿고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만일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사실을 믿는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죄에서 벗어나 기뻐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 다니는 것에 만족하는 형식적인 신앙을 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말하면서도 십자가의 그 큰 은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면 마땅히 우리 죄가 씻어진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 속에는 예수님의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어느 날 간음 중에 잡힌 여자가 간음하다 잡혀 돌에 맞아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예수님이 그 여자를 거기서 살려주었습니다. 그 여자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죽음에서 살아나 ‘다른 사람들은 다 나를 죽이려고 했는데, 나같이 더러운 인간을 예수님이 살려 주셨어’ 하며 예수님의 한없는 사랑에 감사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면 예수님과 이런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물동이를 버려두고

우리가 좀 더 마음을 들여 성경을 읽으면, 성경에 있는 말씀이 그냥 말이 아니라 그렇게 말씀하신 예수님의 마음이 우리 마음속으로 들어옵니다. 우리처럼 추하고 더러운 인간을 사랑한 예수님의 사랑에 감격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어떻게 예수님의 마음을 받았습니까? 성경에는 그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뛰어갔다고 표현했습니다. 즉 그 여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예수님께 얻었으니까 더 이상 물동이를 들고 물을 길러 올 필요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 여자는 자기가 살던 동네에 가서 외칩니다. “내가 메시아를 만났다. 그분은 내 모든 과거를 알고 계시더라. 내게 정말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셨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저 여자가 안 그랬는데 도대체 왜 이래?” 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씩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 간청했습니다. “선생님, 우리 동네에 들어가서 며칠을 계십시오.” 원래 유대인은 사마리아인을 상종도 않는데 예수님은 이틀 동안 사마리아인들과 같이 지내면서 예수님의 마음에 있는 뜨거운 사랑과 은혜를 전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의 만남을 한평생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정말 아름답고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해

여러분, 예수님이 우리 죄를 사한 것을 믿으면 예수님은 항상 우리 곁에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에 이런저런 일을 만날 때마다 하나님이 반드시 우리에게 역사하십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우리 죄가 사해졌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대부분의 사람이 ‘성경은 그렇지만 우린 죄인이야. 아무리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지만 내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나는 죄인이야’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기 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제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말고 아버지 뜻대로 되기를 원하옵나이다.” 예수님은 앞으로 당신이 겪을 십자가의 형벌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할 수만 있으면 피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죄를 사하기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는데 우리 죄를 사하지 못하고 이론으로만 사했다고 하신 것이라면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확실히 사하시려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던 것입니다. 

말씀을 마음에 받아들이면

여러분, 우리가 성경 말씀을 좀 더 깊이 읽고, 그 마음을 떠올린다면 예수님의 마음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면서 우리 죄를 형식적으로 씻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다 씻을 수 있었기 때문에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저도 구원받기 전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 죄를 사했다고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죄인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는 예수님의 마음과 제 마음이 달랐습니다. 구원받은 후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 죄를 사했다면 내 죄가 사해진 것이다. 나는 죄인이 아니다. 나는 의롭다’라고 받아들였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은 단지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그 말씀을 우리 마음에 받아들이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그 예수님의 마음이 우리 마음속에서 일합니다. 
예수님의 지혜와 사랑, 예수님의 구원과 의(義), 거룩함이 우리 마음속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속으로 들어오면 우리가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예수님의 지혜가 우리 마음속으로 들어오면 우리가 깨달을 수 없는 사실을 놀랍게도 깨닫게 되고, 예수님의 의와 거룩함이 우리 마음속으로 들어오면 더럽고 악한 우리를 의롭고 거룩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성경을 읽는 동안

한번은 인터뷰하던 기자가 제게 물었습니다. “목사님도 화냅니까?” “절대로 카메라 앞에서는 화 안 냅니다.(웃음) 하지만 뒤에서는 화를 냅니다.” 기자에게 제가 화를 잘 내는 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제가 성경을 읽고 예수님의 마음을 발견하는 동안 예수님의 마음이 제 마음속에 자리를 잡으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믿게 되고, 예수님이 제가 당하는 모든 어려움과 함께하셨습니다. 저는 예수님이 저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도 좋지만, 그분의 말씀이 성경에 기록되서 성경을 읽는 동안 조금씩 예수님의 마음이 제 마음속에 들어와서 제가 전에 하지 않던 말을 하게 되고, 전에 하지 않던 일을 하게 되고, 전에 하지 않던 사랑을 하게 된 것이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사마리아인 같은 나에게도

어느덧 제 나이가 많아졌습니다. 제가 종종 ‘몇 살까지 살면 예수님으로 온전히 물들어질까?’라고 생각해 보는데 나이가 들수록 더 깊이 예수님으로 물들 것 같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더 닮고 싶습니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고 더 깊이 대화해서 여러분에게도 그 마음을 전해주고 싶습니다. 유대인이 상종도 않던 사마리아 여자와 예수님이 대화하시고 사마리아 성에 들어가셔서 사마리아인들과 같이 이틀 동안 먹고, 마시고, 주무시며 그들에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 예수님이 사마리아인 같은 제게도 오셔서 함께하시며 당신의 마음을 넣어주십니다. 예전에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어느 날 저를 보니까 예수님의 마음이 조금씩 제 마음속에 채워져서 저도 예수님을 닮아서 ‘의롭다. 거룩하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을 읽으십시오. 성경 속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발견하고 말씀을 받아들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도 예수님처럼 변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성경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나 사랑해서 예수님의 마음을 우리 마음속에 넣어주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지혜, 거룩함이 여러분의 마음에 가득 채워지길 기원합니다.
- 2020. 8. 16. 주일 오전 예배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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