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을 믿을 것인가, 말씀을 믿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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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을 믿을 것인가, 말씀을 믿을 것인가
[요한복음 11장 23절 ~ 50절] 2020. 8. 9. 주일 오전예배 설교 -  825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20.08.14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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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와 마르다

우리가 성경을 읽다 보면 그 이야기 속에 예수님의 마음과 등장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드러나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읽은 요한복음 11장을 보면 어느 날 나사로가 병이 들어 그 누이들이 예수님께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마리아나 마르다가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것 같았는데 어느 시점이 되니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사로의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고 말씀하셔서 나아질 줄 알았는데 나사로의 병이 점점 심해지며 죽어가자 마리아의 마음이 변했습니다. “언니, 이러다 오빠가 죽을 것 같아. 그렇지? 예수님이 죽을 병이 아니라고 했는데 왜 이렇지? 저러다 죽는 거 아냐? … 언니, 오빠가 죽었어.”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께 너무나 섭섭했습니다. 나사로가 아플 때 오셔서 살려주셨다면 좋았을 텐데 죽은 지 나흘이 지난 뒤에야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오빠가 살 것을 믿지 못해

이제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일으키러 베다니에 도착했습니다. 마리아와 마르다는 예수님이 오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좀 일찍 오시지. 오빠가 죽기 전에 오셔서 고쳐주시면 얼마나 좋아. 이제 오셔서 뭘 할 수 있겠어’ 하며 섭섭하기만 했습니다. 그래도 마르다는 이성적이라서 곧 나가 예수님을 맞았습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 압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여기서 이 두 사람의 대화에 대해 잠시 생각해 봅시다. 그들은 서로 어떤 생각의 차이가 있습니까? 예수님은 마리아와 마르다에게 “네 오라비가 산다”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런데도 마리아와 마르다는 오빠가 죽어서 이미 장사를 지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하신 “네 오라비가 산다”는 말씀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만약 마리아와 마르다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면 “정말입니까? 고맙습니다” 하며 무척 기뻐했을 것입니다.

군 생활을 이끄시고

저는 원주 통신훈련소에서 군 생활을 했는데, 남들보다 똑똑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늘 저와 함께하시며 도와주셨습니다. 어느 날 “ROC311기 박옥수 이병, 교수 본부로 와라”는 방송이 들렸습니다. 제가 교수 본부로 가서 “충성!” 하고 경례를 하자, 학교 교육 장교님이 제게 “박 이병, 자리에 앉으세요. 박 이병은 사회에서 무슨 일을 했나요?” 하며 존댓말을 하셨습니다. “예! 교회 전도사였습니다.” “과연 그러셨군요.” 장교님이 어제 당직을 서면서 제가 예배 보고를 한 후 산골짜기 양지에서 교육생들을 모아놓고 말씀 전하는 모습을 보신 것입니다. “박 이병, 나는 군 입대 전에는 정말 열심히 하나님을 믿었는데 군대 와서 신앙을 다 팔아먹었습니다. 어제 박 이병을 보면서 밤새 잠을 못 잤습니다. 내가 도와줄 게 뭐 없나요?” “예, 교육 장교님. 지금 산에서 예배드리는데 춥습니다. 교실 하나 주시면 좋겠습니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교육 장교님이 병장을 불러서 “박 이병에게 열쇠를 줘라. 일과가 끝난 뒤에 예배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할 수 있게 해줘라” 하셨습니다.
그날 그분을 제가 처음 만났고 장교와 병사 사이인데도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마음이 같아지는 걸 느꼈습니다. 그분이 제가 훈련병을 마친 뒤에도 그 부대에 계속 남을 수 있도록 해주셔서 저는 3년 동안 부대에서 업무를 하면서 교회 일도 할 수 있었습니다. 제대할 무렵, 저는 제 삶 속에서 하나님이 섬세하게 저를 이끌어 가신 것을 보았습니다. ‘이런 하나님과 함께한다면 내가 어디를 가도 문제 될 게 아무것도 없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브라질 방송국과의 인터뷰

저는 지난 5월 온라인 성경세미나를 전 세계 276개 방송국을 통해 10억 명의 시청자들에게 방송했습니다. 이 일에 특히 브라질 방송국이 매우 적극적이었습니다. 브라질 5대 방송사 중 하나인 헤지 브라지우 TV는 제게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이 방송국과 생방송으로 인터뷰를 했는데 인터뷰를 하는 동안 시청자 소감이 5천여 건이 올라와 방송국 관계자들이 모두 놀랐습니다. 지난 6월에는 브라질 언론사와 기자간담회를 했고 어제도 이번 IYF 2020년 온라인 월드캠프에 대하여 헤지 브라지우 TV와 다시 한번 인터뷰를 하게 되었습니다. 방송국 관계자가 “어떻게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이끌고 이런 호응을 얻느냐?”며 제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고 싶다고 연락을 해왔습니다. 
한국은 의료수준이 높아서 코로나로 생명을 잃은 사람이 많지 않지만 다른 나라들은 생명의 위협을 강하게 느끼며 사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 분에게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생명과 같은 것입니다. 전 세계 많은 분들이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아 감격하고 기뻐하는 간증들을 제게 많이 보내주고 있습니다. 이런 일을 누가 할 수 있겠습니까? 바로 하나님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마음에서 이미 죽은 나사로

나사로가 병이 들었을 때 예수님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을 들은 마리아와 마르다는 ‘아, 오빠가 죽지 않겠구나’라고 생각했는데 병이 점점 더 심해지더니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나사로가 죽은 것이 아니라 마리아와 마르다 마음에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는 말씀이 죽은 것입니다. 말씀이 죽으면서 그들 마음에서 나사로가 완전히 죽어버렸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고 말씀하셨는데도 그들 마음에서 죽은 오빠가 깨어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마음에는 나사로가 살아있었습니다. 하지만 마리아와 마르다의 마음에 그리고 그들을 위로하는 유대인의 마음에 나사로는 죽어있었습니다. 더 가슴 아픈 일은 예수님의 제자들도 나사로가 다시 살아날 것을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확히 믿었다면

예수님이 나사로를 살리시기 위해 유대로 가시면서 제자들에게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을 들은 제자들이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들에게 다시 예수님이 “나사로가 죽었느니라”고 말씀하시자 제자 중 한 사람이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고 했습니다. 그들의 생각이 예수님과 너무 달라 예수님의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의 말씀을 정확히 믿은 제자가 있었다면 마리아에게 “마리아야, 왜 슬퍼해. 예수님이 네 오빠를 살리러 오셨잖아. 나사로는 분명히 다시 살아날 거야. 빨리 나사로에게 입힐 옷과 음식을 준비해 놔”라고 이야기했을 텐데 제자들 중에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오직 예수님 혼자 나사로가 살아날 것을 믿었습니다.

십자가의 진정한 의미

많은 목사님들이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셨지만 여전히 죄인이라고 말하고 성도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칩니다. 이 모습을 보는 주님이 얼마나 안타깝겠습니까? “네가 죄인이라면 내가 널 위해 십자가에서 흘린 피는 무엇이냐? 내가 네 죄도 다 못 씻고 헛되이 죽었단 말이냐? 아니야, 내가 너희들의 죄를 사했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다 씻지 못하셨다면 무엇 때문에 교회에 십자가를 달아 놓는다는 말입니까. 
예수님이 나사로의 집에 가셨을 때 그곳에 있던 유대인들은 “소경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자신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보시며 통분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이 나사로를 다시 살리실 것을 분명히 말씀하셨는데도 제자들조차 말 한마디 못하고 쳐다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수님이 우리 죄를 다 사하셨다!”고 소리치는 것입니다. 저는 어디를 가든지 그 이야기만 하고 다닙니다. 그러는 동안 주님이 저에게 수많은 은혜를 입히셨는데 그것은 결코 제가 선하거나 성실해서가 아닙니다. 전 부족하고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지만 제가 우리 죄를 사하신 그 예수님의 마음을 알고, 그것을 분명히 믿기 때문에 주님이 제가 하는 모든 일에 문을 열고 계신 것입니다. 다른 조건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인생이 고통스러운 이유

나사로의 집에 예수님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다 자기 생각 속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그런 시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그것이 왜 복음이 됩니까? 예수님의 죽음으로 우리가 죄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수많은 목사님들이 우리가 죄인이라고 합니다. 저는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하셨다면 의로운 게 맞다’라고 믿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3~24) 이 말씀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하셨는데 죄인이라고 말한다면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참된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정확히 믿지 않아서 그렇지 주님은 우리 죄를 사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인생을 복되게 이끄시며 우리를 지키시고 도우십니다. 문제는 우리를 도우시는 주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인생이 어렵고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자기 생각을 믿은 가룟 유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습니까? 예수님을 사랑하십니까? 정말 예수님이 여러분의 죄를 눈과 같이 희게 씻은 것을 믿습니까? 주가 우리 인생 전부를 주관하고 계심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왜 걱정하십니까? 주를 섬기는 것에 왜 인색하십니까? 요한복음 11장을 보면 예수님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모두 자기 생각을 믿었습니다. 우리 생각이 중요합니까? 말씀이 중요합니까? 당연히 우리 생각보다 말씀이 중요합니다. 부질없는 우리 생각을 버리고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실까요. 우리가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은 다른 무엇 때문이 아닌 바로 예수님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리아가 오빠 나사로가 살아난 것에 감사해서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는 이야기가 요한복음 12장에 나오는데 이를 본 가룟 유다는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를 보고 “저를 가만 두어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이 가난한 자를 위하는 자기편을 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마리아편을 드는 걸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그 비싼 향유를 발에 부어버리다니 그것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데.’ 물론 그는 돈을 훔쳐가려는 마음도 있었지만 가난한 자를 먼저 도와야 한다는 자기 생각이 너무나 옳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 향유를 허비해 버린 마리아를 칭찬하는 예수님이 불편했습니다. 그 마음을 가진 가룟 유다에게 사단이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은 것입니다.

자신을 믿는 순간

여러분, 사단은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 팔려는 생각을 넣어주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을 믿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하시는 일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돈 얼마를 받고 예수님을 팔기에 이르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길로 가려면 먼저 우리 마음에 만들어져야 하는 세계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사한 사실이 믿어져야 합니다. 그러고 나면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고 싶고 주를 위해, 복음을 위해 살고 싶은 생각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마리아처럼 자기의 귀한 것을 다 드리고 싶은 생각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 가룟 유다처럼 자기가 옳다는 생각도 일어납니다. 사단은 가룟 유다에게 그랬던 것처럼 우리에게 자기를 믿는 생각을 서서히 넣어줍니다. 그 생각을 받아들이면 우리가 지금 당장은 죄에 빠지거나 예수님을 대적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우리가 우리 자신을 믿는 순간부터 사단은 우리를 하나님과 교회를 불신하고 죄에 빠지도록 끌고 갑니다.

‘예배 한 번 빠지면 어때’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았을 때 자신의 생명도 아끼지 않을 만큼 주를 사랑하는 사람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배 한 번 빠지게 되고, 바쁜 일이 생기고…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점점 예수님의 마음과 멀어져 가는 사람들을 봅니다. 마리아와 마르다, 예수님의 제자들, 그곳에 있는 유대인들. 그들은 예수님과 가까운 것 같지만 사실은 사단이 어느 순간부터 예수님을 믿지 못하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처럼 사단은 우리가 예수님과 가까운 것 같지만 실제로는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으로 점점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사단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믿지 못하도록 먼저 그들의 마음에 교회와 종을 불신하는 수많은 생각을 넣어줍니다. 또한, 사단은 하나님이 나에게는 역사하지 않을 것 같고, 내 기도는 안 들으실 것 같고, 나를 사랑하지 않을 것 같은 예수님과 정반대의 생각을 갖게 합니다. 우리는 그 생각이 나중에 문제가 되거나 어려움을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리석게도 그 생각을 하나하나 받아들이면서 말씀도 버리고 믿음도 버리고 주의 은혜에서도 떠나게 되어 고통 속에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 주를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 주의 종 앞에 불신하는 생각을 갖지 않고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집니다. 그리고 그 믿음 위에 조금씩 믿음이 더해지면서 신앙이 자라게 됩니다.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은 없어

우리 중에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 죄인이 주의 은혜로 죄 사함을 받아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죄 사함 받았을 때 누구도 자신이 예수님을 배신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단은 무척 지혜롭기 때문에 우리 하나 속이는 것은 식은 죽 먹기입니다. “목사님, 지금 제 형편이 좀 어려워서 예배에 좀 빠질 수밖에 없지만 제 마음은 안 그렇습니다.” 우리 가운데 이런 느슨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참 많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나는 예수님을 배신하지 않아, 복음을 가로막지 않을 거야’라고 누구도 자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열두 제자 중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았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했으며 결국 제자들 모두 도망갔습니다. 우리도 얼마든지 그들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

구약 성경에 보면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애굽에서 곧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온 그날을 기념하여 유교병을 먹지 말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너희를 그곳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라”(출 13:3)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노예로 살며 온갖 고초를 겪었고 아들이 태어나면 나일강에 던져졌습니다. 그런 고통스러운 삶을 살다가 구원을 받았는데 광야에서 조금 힘이 드니까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은 다 잊어버리고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라고 원망했습니다. 우리도 그들과 같은 사람입니다.

주님으로 말미암아

요한복음 11장 후반부에 보면 마르다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돌을 옮겼을 때 나사로가 살아 무덤에서 나오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제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살아야 합니다. 어려움을 당하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벗어나야 하고 자녀를 키울 때도, 장래 일도 모두 예수님으로 말미암아야 합니다. 
여러분, 이제 사단을 이길 힘이 없는 우리의 각오와 결심을 믿지 말고, 주님만 섬기고 의지하며 사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아픔이 주님의 아픔이 되고, 여러분의 병이 주님의 병이 되어 오직 주님으로 말미암아 은혜를 입는 복된 삶을 살게 될 줄 믿습니다. ‘주님 저도 어둠에 젖을 수 있고 죄에 빠지고 타락할 수 있습니다. 오직 주님만 바라보겠습니다. 저를 인도해 주십시오.’ 우리 모두 이런 낮은 마음을 갖고 주님이 오실 때까지 주님만을 위해 살다가 주님 앞에 서는 그날, 우리 모두가 주의 기쁨과 행복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2020. 8. 9. 주일 오전예배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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