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을 받을 수 없는 야곱이 축복을 받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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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을 받을 수 없는 야곱이 축복을 받은 것처럼
[창세기 27장 1절 ~ 30절] 2020. 7. 26. 주일 오전 예배 설교 -  823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20.07.31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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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마음의 세계

여러분, 성경을 읽다 보면 말씀 속에는 세상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마음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을 처음 읽을 때는 우리 마음의 세계와 성경에 있는 마음의 세계 사이에 큰 차이가 있어서 어색하고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성경의 맛을 느끼고 그 의미를 깨닫게 되면 성경 속에는 어떤 힘이 있어서 예전에 우리가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마음의 세계가 우리 마음에 형성됩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우리 마음의 세계를 만들어 가시는 것이 정말 감사합니다. 
1962년 10월 7일, 저는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제가 환상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본 것도 아니고 예수님과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니었지만 성경 속에서 예전에 가져보지 못한 마음의 세계를 예수님으로부터 발견했습니다. 그렇게 지금까지 58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의인

지난 4월에 온라인 부활절 연합예배를 드렸는데 새벽, 오전, 오후 매시간 200만 명씩 인터넷으로 접속했습니다. 그리고 5월에 온라인 성경세미나를 개최하면서 전 세계 98개국의 276개 방송사에서 제 설교 90분짜리를 11회나 중계 방송해 약 10억 명의 시청자가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후 세계 여러 나라 방송국과 국내 언론사들이 저를 인터뷰했습니다. 지난주에 서울에서 인터뷰를 마칠 때쯤 한 기자가 죄 사함에 대한 성경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해서 제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성경에는 의인에 대해 세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로마서 3장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10)라는 말씀만 본 사람은 의인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그 말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두 번째, 창세기 6장에서 “노아는 의인이요”(창 6:9), 로마서 1장에서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2), 야고보서 5장에서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약 5:16) 하며 여러 곳에서 의인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죄인에서 의인이 되는 과정을 말씀하십니다. 로마서 3장 23절에서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하며 죄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24절에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하며 의인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고린도전서 6장 10절에서는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11절에는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성경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처럼 죄인을 그냥 내버려 두면 죄인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죄인을 의인으로 만들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고 피를 흘리며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에서는 교인들이 10년을 다녀도 죄인이고, 20년을 다녀도 죄인입니다. 그들에게 지금 왜 예수님을 믿느냐고 물어보면, 모두 죄 사함 받고 천국 가기 위해서라고 대답합니다. 
올해 저는 77세인데 자주 죽음을 맞이하게 될 날에 대해 생각하지만 그때마다 아쉽거나 고통스럽지 않고 참 감사합니다. 아마도 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것은 제가 죽음 앞에서도 예수님의 구원으로 웃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참 가난해서 많이 굶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엔 아내가 차려주는 맛있는 음식을 보면서 정말 좋은 시대에 살고 있다고 느낍니다. 한 번씩 제 삶을 둘러보면 ‘내가 이런 복을 받을 자격이 있나?’ 라는 마음이 들어 감사했습니다.

故 가나 前 대통령 

제가 2012년 가나 IYF 월드캠프에 참석했다가 故 ‘존 아타 밀스’ 가나 前 대통령을 임종 5시간 전에 만났습니다. 그 당시 개막식에서 축사하신 영부인이 제게 지금 대통령께서 많이 위중하다며 기도를 부탁하셔서 다음날 대통령궁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대통령께서 제게 “제가 곧 죽을 것 같습니다. 제가 대통령이지만 죄가 있는데 지옥을 가야 하는 게 두렵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대통령님께서 죄인인 것을 어떻게 아셨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내가 죄를 지었으니 죄인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어느 나라든지 죄인이 자기 죄를 판결하지 않습니다. 대통령님의 죄에 대한 판결문을 읽어보신 적 있으십니까?” 그러자 깜짝 놀라시며 “그게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제가 로마서 3장 23절과 24절을 펴서 읽어 드렸습니다. 

우리 죄에 대한 판결문 

로마서 3장 23절에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23절도 믿어야 하지만 24절 말씀도 믿어야 합니다. 24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최종 판결하셨습니다. 어느 날 제가 우리나라 유명한 변호사 한 분에게 로마서 3장으로 말씀을 전했는데 그분이 깜짝 놀라며 “목사님, 이 말씀은 판결문 형식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대통령께 말씀을 전했습니다. “대통령님, 사람들은 누구나 죄를 지었기 때문에 형벌을 받아야 하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에 대한 형벌을 받으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다’고 판결하셨습니다. 故 가나 전(前) 대통령께서는 “왜 저는 이런 말씀을 지금까지 몰랐을까요?” 하셨습니다. “대통령님, 이제 대통령께서는 예수님의 피로 모든 죄가 씻어진 걸 믿습니까?” “예, 목사님. 저는 거룩합니다. 저는 의롭습니다” 하시며 너무나 기뻐하셨고 그 뒤 몇 시간 후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죽음 앞에 섰을 때

여러분, 사람들은 누구나 죄를 짓습니다. 그렇지만 죽음 앞에 섰을 때 죄가 있다면 얼마나 절망스럽겠습니까? 저는 한국 교회 목회자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만약 지금 목회하는 교회의 성도 가운데 암으로 남은 삶이 한 달이나 6개월인 사람이 있다면 그가 무엇을 가장 원하겠습니까? 좋은 집이나 화려한 차를 원하겠습니까?” 아닙니다. 누구나 죄 사함 받기를 가장 원할 것입니다. 저도 사역을 하면서 모든 부분을 잘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 교회 형제자매가 죽음 앞에 섰을 때 구원의 확신으로 죄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고 기뻐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습니다. 감사하게도 그동안 우리 교회 수많은 형제자매가 죽음 앞에 서는 걸 봤지만 그들이 모두 기쁘게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생각하면서 ‘하나님, 제가 뭐라고 이 귀한 복음을 전하게 하십니까?’ 하며 자주 주님 앞에서 울었습니다. 죄악 속에서 죄만 저지르고 어둠 속을 헤매었던 저를 주님이 정확하게 죄를 씻어 주셨고, 그 죄 사함 받는 길을 성경 속에서 발견하게 하고 설교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저희 아버지께도 복음을 전해서 돌아가시기 며칠 전이지만 죄 사함을 받으셨고, 형님과 큰 누님도 죄 사함을 받고 돌아가셨습니다. 

작은아버지 이야기

저희 작은아버지는 일본에 살면서 창가학회 신도셨는데 예수님을 가장 심하게 반대했습니다. 제가 사촌 동생들에게 일본어로 된 죄 사함 설교집을 보내면 작은아버지께서 그 책들을 자식들이 읽지 못하도록 침대 밑에 넣어 숨겨두곤 하셨습니다. 어느 날 후두암 진단을 받은 작은아버지는 암세포가 커지면서 점점 기도를 막아 건강이 위독해졌습니다. 의사가 수술을 권고했지만, 작은아버지는 수술을 거부하셨습니다. 작은아버지는 죽음 앞에 서게 되면서 평생 믿었던 남묘호렌게쿄가 자기 영혼을 좋은 곳으로 인도할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러면서 그동안 침대 밑에 숨겨두었던 죄 사함에 관한 제 설교집을 꺼내 읽기 시작했습니다. 일주일 뒤 작은아버지가 “이게 진리다. 우리 조카가 큰 사람이다. 조카 말이 맞네” 하시며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시면서 작은어머니에게 “당신도 이 책을 봐라” 하셨고 그후 일 년 정도 사시다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복(福) 가운데 가장 큰 복은
 

제 가까이 계시던 분들이 한 분 한 분 죄 사함을 받고 세상을 떠나셨을 때 제가 받은 죄 사함, 제가 받은 의, 제가 받은 거룩함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드릴 것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성경을 하나의 구전(口傳)처럼 말하지만 저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오늘 읽은 창세기 27장은 이삭이 나이 들어 죽기 전에 축복하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복(福) 가운데 가장 큰 복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죄 사함 받고 거듭나는 것입니다. 
어느 날 이삭이 복을 주기 위해 맏아들 에서를 불러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별미를 만들어 와라. 내가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겠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성경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에서가 복을 받지 않고 야곱이 복을 받았습니다.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고

에서는 아버지 이삭의 말씀대로 자기가 사냥한 짐승을 가져다 요리해서 아버지께 드린 후 복을 받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자신에게 복 받을 조건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복 받을 생각조차 안 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 리브가가 야곱에게 “야곱아, 네가 복을 받아야 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야곱은 어머니께 “제가 어떻게 복을 받을 수 있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염소 새끼 한 마리를 가져와. 아버지가 즐기는 별미를 내가 만들어 줄게.” “어머니, 말도 안 돼요. 아버지가 눈이 보이지 않아도 저를 만져보면 바로 아실 겁니다. 형은 털 사람이고 저는 매끈매끈해서 제가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 겁니다.” 그러자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에게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쫓고 가서 가져와”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에서 ‘너의 저주는 내게 돌리리니’라는 말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과 같습니다. 야곱은 처음부터 자신이 복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에서 형처럼 사냥도 못 하고, 아버지가 기뻐하지도 않았는데 어머니는 ‘내 말만 쫓고 가서 가져와라. 네 저주를 내게로 돌리리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지구상에서 우리의 저주를 대신 받은 분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성경에서는 우리가 에서처럼 열심히 기도하고, 노력하고, 충성해서 복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자기가 성실하게 충성하고 순종해서 복을 받으려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축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복 받을 조건이 전혀 없는 야곱이 어머니 리브가가 대신 준비한 것으로 복을 받은 것처럼 이 성경은 우리의 노력이나 수고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죄 사함 받는 것을 말합니다.

야곱이 받은 축복

여러분, 리브가가 모든 것을 준비해서 야곱이 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인으로 설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어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 주시고 하나님 앞에 서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도록 완벽하게 해주셨습니다. 그것에 우리의 노력이나 수고를 손끝만큼도 보태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우리의 것이 나타나면 나타날수록 우리의 부족함이나 연약함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27장에서 야곱은 복을 받으러 아버지 앞에 나아갈 때 자기가 드러날까 봐 겁을 냈습니다. 그는 최대한 자기를 숨기고 형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나아갔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복을 받을 수 없는 인간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신 것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저는 창세기 27장을 읽으면서 ‘나는 에서가 아니라 야곱이야. 나는 죄를 지어서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어. 그래서 복을 받으려면 나를 가리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야 해. 그럼 하나님이 나를 받으시는 거야’ 하며 이런 방법이 저를 한없이 기쁘게 했습니다. 

창세기 27장 속의 복음

창세기 27장에는 복음이 아주 명백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는 에서처럼 훌륭하거나 잘한 게 아무것도 없었는데 야곱처럼 복을 받았습니다. 에서를 생각하면 너무나 불쌍했습니다. 사냥이란 쉽지 않은 일인데 만약 노루를 잡는다고 합시다. 도망가는 노루를 향해 쏜 화살이 노루에게 맞으면 노루가 죽을힘을 다해 도망칠 것입니다. 마침내 에서가 활을 들고 달려가 쓰러진 노루를 어깨에 메었습니다. 노루 한 마리의 무게가 약 50㎏ 정도라고 생각할 때 고개를 넘고 넘어 대략 20에서 30리를 걷는다면 그건 완전히 중노동입니다. 그렇게 수고해서 아버지 말씀에 순종해 복을 받으려 했습니다. 에서는 웃으며 이제 ‘조금 있으면 복 받겠구나’ 하고 집으로 돌아와 요리했을 것입니다. 그가 별미를 들고 아버지 앞에 나아갔습니다. 아버지가 깜짝 놀라며 “너는 누구냐?” “저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입니다.” “뭐라고? 방금 에서가 가져온 음식을 먹고 축복해 줬는데.” “아, 야곱이 제가 받을 복을 빼앗았습니다. 아버지, 빌 복이 그거 하나뿐입니까? 저도 복을 주십시오.” “내가 그를 너의 주로 삼았고 모든 복을 그에게 주었다. 이제 너는 야곱을 섬겨야 해.” 에서는 대성통곡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에서의 이름으로

성경 속에 있는 이야기 하나하나가 그냥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신앙생활에서 충성하거나 열심히 기도하면 복을 받을 줄로 압니다. 그러나 성경은 ‘에서가 그렇게 열심히 충성했는데 저주를 받았잖아.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복을 받을 수 없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목사님이 성도들에게 충성하면, 열심히 하면 복을 받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받기 위해 우리로 말미암아야 하는 것은 손끝만큼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야 합니다. 만일 야곱이 자신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나아갔다면 복을 받지 못합니다. 그는 에서의 옷을 입고, 에서처럼 몸에 털을 감고, 에서의 이름으로 나아갔습니다. 이삭은 그가 야곱의 음성이지만 에서의 이름으로 나아왔고, 만져 보니 에서처럼 손에 털이 있고, 별미를 가져왔기에 먹고 그에게 복을 주었습니다. 하나님도 우리가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아갔을 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미국 CTN에서 방송설교를
 
저도 야곱처럼 주님이 주신 복을 받고 지내는 동안 정말 행복하고 감사했습니다. 이따금 한 번씩 형제자매들의 식사 초청을 받아 그 집에 가보면 무척 음식을 잘 차려놓아서 깜짝 놀랍니다. ‘내가 이런 음식을 먹을 자격이 있나? 아무리 생각해도 제게 그런 자격이 없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이런 음식을 먹을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세상에 훌륭한 사람이 많은데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10억의 인구가 복음을 듣게 하셨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았지만 이제 미국의 주요 기독교 채널인 CTN에서 제 설교를 방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다른 나라 20여 개 방송국에서도 방송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야곱이 복을 받은 것처럼

창세기 27장처럼 예수님은 제게 은혜를 베푸셔서 저주를 받아 멸망해야 할 저를 구원해주셨습니다. 제가 구원받은 것은 충성하거나 말씀을 잘 지켜서가 아니라 야곱과 같이 축복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인데 야곱이 형 에서의 이름을 빌려서 아버지께 나아가 축복을 받은 것처럼 저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 복을 받았습니다. 야곱이 한 일은 어머니에게 “형 에서는 털사람이고 나는 매끈매끈한 사람인데, 아버지가 나를 만지실진대 내가 아버지를 속이는 자로 보일지라.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하나이다”라고 말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어머니 리브가가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쫓고 가서 가져와라” 하는 그 말을 믿었던 것입니다.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에게 자신의 모든 걸 맡겼습니다. 그리고 리브가는 야곱이 복을 받을 수 있도록 모든 걸 갖추었습니다. 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로서 예수님이 우리의 저주를 다 감당하시고 은혜를 베푸신 것과 같습니다. 
죄밖에 짓지 않던 제가 어느덧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하고 예수님과 함께 58년을 살았습니다. 이젠 제 나이가 많은데 여전히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고, 올해 우리 선교회를 통해 하나님이 역사한 일을 생각하면 마치 하늘나라에 앉아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 창세기 27장에 나오는 야곱이 바로 저이고 여러분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고 말할 수 없는 은혜와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 2020. 7. 26. 주일 오전 예배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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