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을 망치는 소리 vs 믿음을 주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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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을 망치는 소리 vs 믿음을 주는 소리
[민수기 13장 21절 ~ 14장 3절] 2020. 6. 28. 주일 오전 예배 설교 -  819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20.07.03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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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F 온라인 컨퍼런스’ 진행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주 ‘COME BACK’이라는 주제로 전 세계 기독교지도자들과 ‘CLF 온라인 컨퍼런스’를 진행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각국의 수많은 목회자들과 복음의 말씀을 나누면서 참 감사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분들이 남긴 소감을 현지 선교사님들이 번역해 저에게 보내주었는데 다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분들이 감사와 기쁨의 글을 남겨주셨습니다. 
사람의 ‘생각’은 어떻게 형성되는 걸까요? 그리고 좋은 생각은 어디서 만들어지고 아내를 의심하는 생각, 불평하는 생각들은 어디서 만들어지는 걸까요? 참 신기한 것은 우리가 아무리 행복한 조건을 가지고 있어도 어두운 생각을 하게 되면 어둠 속에 헤매야 하고 아무리 어려운 조건을 가지고 있어도 밝은 생각을 하게 되면 삶이 밝아집니다. 

軍 시절 잃은 장갑이야기

전 군대 시절의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사람들은 ‘박 목사는 설교할 때 군대 이야기만 하네’라고 말할는지 모르지만 군 생활 3년을 지내면서 정말 잊을 수 없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할 때마다 마음에 힘을 얻습니다. 군대에서 장갑을 잃어버렸을 때 저는 밤에 장갑을 훔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주님께서 ‘네가 장갑을 훔쳐도 안 잡힐 수 있다. 그런데 만약에 잡히면 내무반에서 네가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겠니’라는 생각을 주셨습니다. 그 생각이 드니 도저히 장갑을 훔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제게 장갑 한 켤레를 주십시오’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지금도 그때 기억이 생생합니다. 다음날 수류탄 투척 훈련을 받다가 10분간 휴식시간이 되었습니다. 당시는 군대 들어온 지 얼마 안 돼 서로 얼굴도 잘 모르던 때인데 한 동료가 지나가다가 제 명찰을 보고 “어? 박옥수 너 장갑 없나?”라고 물었습니다. “응. 큰일 났다. 밤에 누가 훔쳐갔어.” “짜식, 나한테 이야기하지.” “너 장갑 두 켤레야?” “응, 두 켤레야. 우리 형이 여기 중대장인데 내가 손에 동상이 있다고 한 켤레 더 주더라. 전우 좋은 게 뭐냐. 자, 이거 껴라.” 그렇게 제가 동료로부터 장갑 한 켤레를 받아 손에 끼는데 너무나 감격스러웠습니다. ‘아, 하나님. 당신은 군대에서도 일을 하시네요!’ 그 힘으로 제가 군 생활을 너무나 행복하게 보냈습니다.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지만

여러분, 저는 목사로서 여러분 마음에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생각이 들도록 설교를 합니다. 그래서 같은 간증도 백 번씩 말하곤 합니다. 그러면 형제자매님들이 기억하기 좋고 그걸 기억하면서 믿음이 생기고 행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에 닥칠 미래의 일을 현재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은 믿음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끄신다는 그 믿음이 우리 앞에 닥칠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됩니다.
저는 교육생으로 있던 원주 육군통신학교로 자대 배치를 받았습니다. 당시 제가 부대에서 제일 낮은 계급이었고 가진 게 아무것도 없었지만 아침에 일어나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이 제 마음을 소망으로 가득 채워주셨습니다. 제가 훈련받으러 갈 때나 밤에 잠자리에 들 때도 제 마음에는 말씀과 소망이 가득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군 생활이 어려워 탈영하고 싸우고 심지어는 자살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저는 이등병으로 한평생 살라고 해도 행복할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군 생활을 마치고 통신훈련소 정문을 나올 때 ‘이런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면 사하라 사막에서도, 남극에서도 얼마든지 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병이 들 수 있고, 돈이 없어 고통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부부 사이에 불화가 생기거나 자녀들이 문제를 일으킬 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어떤 어려움보다 우리 하나님이 크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만드실 때 깜깜한 땅굴 같은 어둠 속에 있어도 마음은 얼마든지 밝을 수 있도록 만드셨습니다.
이제 그라시아스합창단은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합창단이 되었습니다. 그라시아스합창단은 지금까지 복음만을 위해 노래를 불러왔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세상 사람들처럼 갖춘 것이 없습니다. 합창단원들은 별도로 보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세계 곳곳을 다니며 연주를 하고 투어를 할 때 숙소가 아니라 밤차를 타고 가며 자야 할 때도 많습니다. 다른 성악가들은 목소리를 아낀다고 하는데 집회를 할 때 보니 그라시아스합창단은 아침 7시부터 연습을 시작해서 공연을 마치고 나면 다시 연습을 하고 밤늦게 숙소로 돌아옵니다. 정말 다른 합창단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희생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 그들이 행복하게 합창할 수 있는 것은 합창을 통해 마음이 열린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주님 앞에 돌아오는 것을 보면서 기쁨과 행복을 얻기 때문입니다. 단원들 속에 ‘날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노래한다’라는 마음 하나가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눈물겨운 합창을 부를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애굽에서의 종살이

오늘 읽은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두었을 때의 일을 기록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종으로 살면서 아들을 낳으면 나일강에 던져야 하는 비참한 삶을 살았습니다. 자신의 생명보다 귀하게 여긴 자신의 아이를 나일강에 던질 때 그 아이 엄마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아마 자다가도 “아가, 우리 아가”하며 울고 우는 삶을 살았을 것 같습니다. 그런 비참한 삶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져내셨습니다. 출애굽 할 때 바로의 군대가 따라오자 홍해를 갈라 백성들을 지나가게 하신 후에 바로의 군대들을 홍해 바다에서 다 멸하셨고 광야를 지날 때는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백성들이 목이 마르다고 했을 때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하시며 백성들이 굶지 않도록 만나를 주시고, 메추라기를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이러한 보호하심으로 가나안 땅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열두 정탐을 뽑아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했습니다. 그들이 돌아와서 가나안 땅은 포도 한 송이를 막대로 꿰어 둘이 어깨에 메고 갈 정도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말하면서 그곳에서 가져온 각종 실과를 보여주었습니다. 백성들이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구나’하며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데 그런 것들이 무슨 문제가 됩니까? 그런데 믿음이 없는 사람은 그 생각의 종이 되고 맙니다. 이럴 때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그러면 그런 생각들은 다 없어지게 됩니다. 

믿음의 세계 앞에 두려움

제가 압곡동에서 첫 사역을 시작했을 때 저희를 돕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제가 얼마든지 ‘내가 여기 있다 굶어 죽을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에 도망갔을 수도 있는데 그런 생각이 한 번도 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기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믿음은 훌륭한 목사님이나 가질 수 있는 것이지 나 같은 사람은 믿음 못 가져’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단은 그런 생각을 통해 여러분들이 믿음을 갖지 못하도록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믿음을 가질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10) 여기 계신 모든 분이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해 지음을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 전부를 주장하고 계십니다. 그 사실을 믿을 때 우리 인생은 가장 복되고 영광스러운 날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마음을 품느냐에 따라

지금 여러분에게 마음에 있는 근심스러운 것 다섯 가지를 골라보라고 하면 금세 고를 수 있을 것입니다. 반대로 행복한 것 다섯 가지를 찾아보라고 하면 조금 전에 근심했던 일들에서 벗어나 행복한 쪽으로 마음이 옮겨갈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가 어떤 마음을 품느냐가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가 행복한 위치에 있다가도 불행한 생각 하나를 받아들이면 그 불행한 생각이 수많은 행복한 것들을 다 잡아먹어 버립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받아들입니다. 그러면 그 믿음이 불행, 슬픔, 외로움, 미움들을 다 잡아먹어 버립니다. 주일 예배에 와서 말씀을 듣는다고 돈이 생기고 형편이 좋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예배를 통해 우리 마음이 말씀에 젖어들면서 이 말씀이 슬픔을 이기게 하고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합니다. 제가 이런 복음의 삶을 살 수 있었던 것도 지금까지 하나님의 말씀이 저를 이끄셨기 때문입니다. 

어두운 생각이 들어오니

열두 정탐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40일 동안 탐지한 결과 그곳은 과연 젖과 꿀이 흐르고 과일이 풍성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생각 하나가 들어왔습니다.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대한 아낙 자손도 있어’ 이 생각 하나가 가나안의 복된 것들을 다 집어삼켜 버렸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는데 우리가 아낙 자손 하나 못 이기겠어. 걱정할 필요 없어. 그동안 수많은 전쟁에서 늘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셨어.’ 이런 믿음이 없으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탐의 말을 듣고 밤새 통곡을 하며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 왕의 손에서 그들을 건져내 홍해를 건너게 하시고, 목마를 때 반석에서 물을 주시고,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신 하나님을 다 잊어버렸습니다. ‘우린 아낙 자손을 이길 수 없어, 우리는 메뚜기 같아. 차라리 애굽으로 도망가자’ 이 생각 하나 때문에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이스라엘 백성 60만 명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사단이 우리에게 생각을 넣어줄 때 그 생각을 받아들이면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형편 앞에서 절망하게 될 것입니다. 

말씀이 죽고 신앙이 무너져

얼마 전에 한 젊은 선교사님이 부모님이 이혼했다며 제게 전화를 했습니다. 아버지가 신앙하시던 분인데 우리 교회를 비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교회를 떠나면서 삶이 흐트러지고 마음이 어두워지면서 나중에는 이혼까지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를 비난하는 일들은 어느 시대나 있었습니다. 베드로나 바울뿐만 아니라 예수님까지도 거짓으로 비난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도 거짓으로 욕하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별로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목사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워야 할 성도들이 그런 이야기들을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면 문제가 됩니다. 우리의 구원이나 믿음은 스스로 얻은 것이 아니라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얻은 것인데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에 있는 말씀이 죽고 신앙이 무너져 내리게 됩니다.
교회를 비난하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장로님들이나 목회자에게 물어야 합니다. 그런 생각들을 마음에 품고 감추고 있기 때문에 신앙의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목회자에게 “성경은 이렇게 되어 있는데 왜 이렇게 하셨습니까?”라고 물으면 대답해 주고, 정말 그 목회자가 틀렸다면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잡으면 됩니다. 목회자의 마음이 부정하고 불의하면 하나님이 동행해 주시겠습니까? 그에게 역사하실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절대 불의한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몇몇 목회자들이 부정하면서 목회를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은 결코 속일 수 없습니다.

신앙을 망치는 소리

하나님의 역사는 말씀에서 시작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을 읽어야 하고, 하나님을 경험한 간증을 교회 안에서 나누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서로 간증을 나누었다면 그동안 자신들에게 역사하셨던 하나님을 기억하며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 소리가 들립니다. 그것은 ‘신앙을 망치는 소리’와 ‘믿음을 주는 소리’입니다. 많은 사람이 소리의 출처를 정확히 따져보지 않고 아무 소리나 받아들이다가 결국은 이 귀한 믿음을 다 팔아버리고 세상의 어려움 속에 빠져 살아갑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수많은 하나님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럼 왜 하나님이 당신의 하신 일을 기록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내가 너에게 이렇게 일할 거야. 두려워하지 마’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기 위함입니다. 여러분, 얼마나 놀랍습니까?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 속에 일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겸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불신하게 하는 사단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면 안 됩니다.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도 ‘이것은 독이 된다. 이것은 보약이 된다. 이것은 건강한 거다’ 하며 판단하고 먹듯이 영적으로도 아무 생각이나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다윗과 사울의 차이점

다윗이 오랫동안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그가 어릴 때는 사무엘이 그의 영적 지도자였고, 젊을 때는 나단 선지자가 그리고 나이 들었을 때는 갓 선지자가 그의 곁에 있었습니다. 다윗이 잘못했을 때마다 선지자들이 책망했고 하나님 앞으로 마음을 다시 돌이키도록 인도했습니다. 그렇게 다윗은 한평생 자기 결정을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 종의 말씀을 따르고 순종하며 하나님의 일꾼으로 살았습니다. 
반대로 사울은 여전히 자기 옳은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잘못을 변명하기에 바빴고 선지자의 권면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를 버렸습니다. 사울은 하나님보다 백성들 앞에 자기를 세우는 일에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사울과 같은 사람이 많습니다. 저는 믿음 안에서 참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대구 선교학교에 있을 때 당시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만을 위해 한평생을 바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렇게 사는 사람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다 자기 길을 갔습니다.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앞으로 우리 선교회를 통해 귀한 하나님의 일꾼들이 계속 자라서 그들이 늘 겸비한 마음으로 주의 일을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대로 믿었을 때 

목회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성경에서는 함부로 하나님의 종을 판단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종을 불신하게 되면 종으로부터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결국 믿음을 배울 수 없게 돼 신앙을 할 수 없습니다.
한번은 암에 걸린 김 자매가 입맛이 없어 밥을 먹을 수 없다며 제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자매님, 자동차는 입맛을 몰라도 휘발유를 넣으면 갑니다. 사람도 밥을 먹어야 면역력이 생기고 힘이 나 병을 이길 수 있습니다.” 자매님이 제 말을 그대로 믿고 입에 써도 꾹 참고 먹으면서 몸이 회복되었습니다. 암 투병 중인 다른 분에게도 김 자매님에게 한 것과 똑같은 이야기를 했는데 그분은 ‘박 목사가 암에 걸려봤어? 자기가 암에 걸리면 이런 말 안 할 거야’ 하며 제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정말 안타깝게도 그분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신앙에 마음을 드려야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은 소홀히 여겨도 되는 값싼 것이 아닙니다. 돈을 많이 주고 사는 것이 아니지만 마음을 들이고, 정성을 들여야 하는 귀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신앙을 업신여기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내’ 생각보다 목회자가 전하는 말씀을 더 신뢰할 때 그 목회자를 통해 전해진 말씀이 우리 마음속에 들어가서 어려움을 이기게 하고, 병을 이기게 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들은 우리 밥이야! 두려워하지 마! 그들의 신은 거길 떠났어! 우리는 하나님이 함께해! 우린 분명히 이겨!”라고 믿음의 말을 했고 그들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여러분, 이제 하나님을 믿읍시다. 우리 속에 크고 작은 문제와 어려움으로 시험이 들 때 교회 형제자매와 교제하고 성경은 뭐라고 말하는가 확인해보십시오. 우리는 오래오래 교회와 함께하면서 말씀과 예수님과 동행합시다. 그때 하나님이 우리를 들어 쓰시고 우리의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넘칠 것입니다.
- 2020. 6. 28. 주일 오전 예배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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