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회개 기도만으로 죄가 사해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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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회개 기도만으로 죄가 사해지는 걸까?
[요한복음 4장 7절 ~ 19절] 2020. 6. 21. 주일 오전 예배 설교 - 818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20.06.27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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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아 여자 이야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주일에 여러분의 얼굴을 볼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본문으로 읽은 요한복음 4장 7절부터 19절까지 말씀은 사마리아 여자와 예수님의 대화입니다. 그냥 평범한 대화 같지만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자 사이에 흐르는 마음을 표현한 이야기가 너무나 재미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에는 유대의 관원 니고데모와 예수님의 대화가 나옵니다. 니고데모는 유대의 관원이니까 지위도 높고 사람들을 가르치는 직책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그가 높은 직위에 있었지만 예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데도 모든 사람에게 대접을 받으니까 다른 사람보다 마음이 높았습니다. 이와 반대로 요한복음 4장의 사마리아 여자는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지금은 여섯 번째 남편과 사는 멸시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이혼 가정의 많은 문제들

일반적으로 부부가 이혼을 할 경우 서로간의 갈등과 자녀 문제로 인해 고통을 받습니다. 현재 한국 사회는 이혼율이 증가하면서 그로 인해 야기되는 문제가 심각합니다. 특히 이혼 가정의 자녀들이 겪는 고통이 정말 큽니다. 예전에는 한국의 이혼율이 아주 낮았습니다. 그렇다면 그 당시 부부가 서로 만족해서 이혼을 안 했을까요? 사실 결혼해 살면서 남편에게 아내가 사랑스럽고 예쁘고 귀한 건 사실이지만 100% 만족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반대로 아내도 남편이 자신을 사랑해주고 돈을 벌어다 주면 좋긴 하지만 그렇다고 다 만족하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종종 우리 자신을 봐도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참 많은데 어떻게 부부가 마음이 다 같을 수가 있겠습니까? 

청소년교육을 시작하면서

1995년부터 제가 청소년교육에 관심을 갖고 일을 시작했는데 젊은이들이 가진 신선함과 밝음, 활기가 넘치는 모습을 보면서 젊음이 부러울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젊은이들과 지내는 게 참 좋습니다. 사실 젊은이들은 저같이 잔소리하고 그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늙은 사람을 좋아하진 않을 것입니다. 저는 인생을 살면서 부모가 이혼하여 자식들이 고통당하는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들은 겉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웃고 기뻐하며 즐겁게 공을 차기도 하지만 그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보면 새엄마나 새아빠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하며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봅니다.

한 여자와 한 남자의 대화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자는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습니다. 한꺼번에 다섯 명의 남편이 있었던 게 아니라, 처음에 진짜 좋은 남자라고 생각해서 결혼했는데 마음이 맞지 않아서 이혼하고, 두 번째 남편과 살다가 이혼하고, 세 번째 남자와 살다가 이혼하고, 그렇게 이혼하는 동안 고통을 많이 겪었을 것입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우물가에 가셨습니다. 그때 사마리아 여자가 물을 길러 왔는데 예수님이 여자에게 물을 좀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렇게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자 사이에 대화(요 4:9~14)가 이루어지면서 여자가 예수님을 쳐다보며 질문했습니다.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즉 한 여자와 한 남자의 대화, 목마른 사람과 물을 가진 사람의 대화, 그 대화를 통해 그 사람 마음속에 깊이 들어가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그 여자는 ‘생수를 줄 수 있는 사람이 왜 내게 물을 달라고 하실까?’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삽나이까.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먹었으니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라고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자와 예수님의 대화는 표면적으로는 물 이야기지만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자의 마음속 깊은 세계로 들어갔습니다.

마음의 남편이 되고

요한복음 3장에서 니고데모는 예수님께서 거듭나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자기 생각과 맞지 않으니까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하며 부정적으로 대답했습니다. 이처럼 보통 사람들 같으면 ‘농담도 잘하시네. 어떻게 한 번 마신다고 목마르지 않는 물이 있어? 말도 안 돼’라며 예수님께 “무슨 물을 한 번 마시면 영원히 목이 마르지 않아요? 뱃속에 수도꼭지 달았어요?”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여자는 그들과 전혀 다르게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요 4:15)라고 말했습니다. 이 여자는 남편을 다섯 번이나 바꾸고 여섯 번째 남편과 살고 있었지만 현재 그 남자도 이 여자의 참 남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다섯 번이나 이혼하는 동안 이 여자의 마음에 많은 상처가 남았고, 사람에 대한 기대감마저 무너졌을 것입니다. 이 여자는 ‘내가 어쩌다가 남편을 다섯 번이나 바꿔야 했지? 나보다 못난 여자들도 남편이랑 이혼 안하고 사는데 나는 남편 복이 지지리도 없어’ 하며 자기 신세를 한탄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여자는 평범한 여자들과 다르게 예수님을 만나면서 예수님이 그 여자 마음의 남편이 되고 예수님과 마음을 같이 나눌 수 있는 위치가 된 것입니다.

폐결핵을 앓던 미선이
 
예전에 대덕수양관에서 수양회 를 할 때 종종 점심시간에 족구를 하는데 하루는 어떤 부인 자매가 제게 와서 “목사님, 친척이 왔는데 집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상담을 좀 해 주세요”라고 부탁했습니다. 요즘은 결핵약의 효능이 좋지만, 당시 그 자매의 친척인 미선이네는 폐결핵으로 미선이 아빠가 몇 년 전에 죽고 미선이 엄마도 폐 한쪽을 잘랐습니다. 그리고 스무 살 미선이는 폐결핵이 재발되어 서서히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체중도 점점 줄어서 25㎏ 정도도 안 되어 보였습니다. 그날 제가 말씀을 전하는데 모녀가 ‘예수 믿는다고 병이 낫겠나’ 하며 말씀을 듣지 않아 다음 날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그냥 집으로 돌아가버렸습니다. 미선이 연락처와 주소도 몰라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 후 5개월 쯤 지나서 미선이 엄마가 제게 전화를 했습니다. “목사님, 저 미선이 엄마입니다.” “네, 반갑습니다.” “목사님, 내일 오후에 시간 되시면 뵈러 갈게요.” “예, 오십시오.” 이튿날 모녀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제가 미선이에게 말했습니다. “미선아, 예수님 믿고 병에서 나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어?” 미선이는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이에요?”라며 화를 냈습니다. 그날 저는 또 제대로 말 한마디 못하고 미선이와 헤어졌습니다.
 
점쟁이를 찾아갔더니
 
한 열흘 뒤에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미선이 엄마입니다. 내일 찾아뵙고 싶습니다.” “예, 오십시오.” 다음날 미선이가 왔을 때 제가 온 마음을 다해 “미선아, 피곤하지? 짧게 이야기할게. 30분이면 돼” 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미선아, 이 이야기 믿어져?” “예, 목사님. 믿어져요.” “미선이 엄마도 이거 믿으세요?” “예, 목사님. 우리 죄가 없어졌잖아요.” 절대로 믿지 않을 것만 같던 미선이가 드디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미선이 엄마가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했습니다. 며칠 전 병원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선이 엄마, 부탁이 있습니다. 병원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어떤 약도 듣지 않아요. 이제 병원에 오셔도 소용없습니다.” 남편이 결핵으로 죽었는데 사랑하는 딸마저 떠나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파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날 한없이 눈물을 흘리며 시내를 걷는데 비까지 왔습니다. 그렇게 저녁때가 되었는데 갑자기 알고 지내던 점쟁이가 생각나서 찾아갔습니다. 그 점쟁이에게 미선이를 살릴 수 있는 길이라면 전 재산과 자신의 생명이라도 바치겠으니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점쟁이는 미선이가 굿을 해서 신을 받고 무당이 되거나, 예수를 믿는 방법이 있다고 말했답니다. 

무당이 될래, 예수를 믿을래

미선이 엄마는 딸을 살려야 하지만 무당을 만들기는 싫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잠자는 딸의 손을 꼭 잡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우리 미선이 살려주세요.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이튿날 미선이 엄마가 미선이에게 얘기했습니다. “미선아, 할 이야기가 있어.” “엄마, 뭔데요?” “네가 신을 받고 무당이 되면 살 수가 있대.” “엄마, 나 무당 되는 거 싫어. 무서워.” “그렇지 않으면 예수를 믿어야 한다는데 너, 예수님 싫어하잖아.” “엄마, 나 무당 싫어. 예수님 믿을게.” 전에 그렇게 싫어했던 예수님을 이제는 믿는다고 했습니다. 다음날 모녀가 저를 찾아와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복음을 전하다 보면 하나님이 사람들을 이끌어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미선이가 죽음 앞에 있다가 구원을 받았듯이 하나님은 이런 일들을 통해서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 후 제가 충남대학교에서 집회를 마치고 나오는데 모녀가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미선이 얼굴이 무척 좋아졌습니다. 미선이는 폐결핵 약을 끊은 뒤 위장이 튼튼해져서 뭐든지 잘 먹고 건강해졌습니다. 그러다 세월이 한참 흐른 어느 날 미선이가 주님 품으로 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미선이가 먼 도시에 살아서 자주 만날 수 없었지만 그때 건강을 찾아 밝아진 미선이의 얼굴은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가까이에서 미선이를 신앙으로 이끌어주지 못한 게 아쉽지만 미선이가 구원받은 것을 생각하면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합니다. 미선이는 절대 구원받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진짜 예수님을 싫어했고 싫다는 표현을 노골적으로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의 마음을 바꾸어서 예수님 앞으로 오게 했습니다. 주님은 미선이를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이끌 수 있는 힘이 있었던 것입니다. 

피지의 한 방송국과 인터뷰

지난번에 피지 원티비(Fiji ONE TV) 방송국과 인터뷰가 있었는데 방송사에서 요한1서 1장 9절의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는 말씀에 대한 설명을 요청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주님이 죄를 사하신다고 하는데 그것은 사실이지만 말씀 가운데 일부분입니다. 
레위기 4장에는 속죄 제사에 관한 말씀이 있습니다. “만일 평민의 하나가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다가. 그 범한 죄에 깨우침을 받거든 그는 흠 없는 암염소를 끌고 와서 그 범한 죄를 인하여 그것을 예물로 삼아. 그 속죄제 희생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 희생을 번제소에서 잡을 것이요. 제사장은 손가락으로 그 피를 찍어 번제단 뿔에 바르고 그 피 전부를 단 밑에 쏟고. 그 모든 기름을 화목제 희생의 기름을 취한 것 같이 취하여 단 위에 불살라 여호와께 향기롭게 할지니 제사장이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얻으리라.”(레 4:27~31) 이것은 죄를 사함 받는 속죄 제사의 과정입니다. 

예수의 피 vs 우리의 회개

죄 사함을 받으려면 첫째, 죄를 지어야 하고 둘째, 자기가 죄를 지은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죄를 짓고 깨달아서 뉘우치고 용서를 빈다고 죄가 씻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죄를 짓고 죄를 지은 것을 깨달은 사람이라야 속죄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자격이 있는데 그가 흠 없는 암염소를 끌고 와서 머리에 안수하고 그 염소를 잡은 후 제사장은 염소의 피를 찍어 번제단 뿔에 바릅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속죄 제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요한1서 1장 9절에서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신다”라는 말은 맞습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내가 회개했기 때문에 죄가 사해진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 죽음을 지불하지 않고는 절대 죄가 사해지지 않기 때문에 우리 죄가 완전히 씻어지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합니다. 만일 내가 죄를 깨닫고 주님 앞에 회개한다고 죄가 씻어진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필요가 없습니다. 죄를 사하는 것이 예수의 피냐? 우리의 회개냐? 라고 물었을 때 정확히 말해 예수의 피가 죄를 사하는 것이지 회개가 죄를 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9장 22절에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죄 사함이 없다”라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죄에서 해방

우리의 죄를 사하는 것은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피입니다. 처음에 우리가 죄인인 것을 깨닫고,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의 피가 이미 우리 마음 판에 뿌려져서 우리 죄가 사해졌다는 믿음으로 죄에서 해방을 받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교회를 다니며 예수님이 날 위해 죽었다고 말하고 내 죄를 위해 피를 흘렸다고 하지만 예수님의 피가 내 모든 죄를 사했다는 사실을 정확히 모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피가 내 죄를 위해 흘려졌다면 내 죄가 사해진 것이 확실합니다. 만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는데도 내 죄가 남아있다고 한다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실패했다는 말입니다. 주님은 모든 죄를 십자가에 못 박아서 완벽하게 눈처럼 희게 씻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의로워졌어’

성경에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5) 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6장 10절에는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그러나’ 11절에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전 6:10~11)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그러나(but)’란 단어가 정말 좋습니다. 우리는 “너 죄를 지었어. 그러나 씻어졌어. 너 죄를 지었어. 그러나 거룩해졌어. 너 죄를 지었어. 그러나 의로워졌어”라는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의 결과입니다.

도미니카 목회자 모임

예전에 제가 도미니카 목회자 모임에서 구원에 대해 말씀을 전하면서 “저는 의롭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듣던 목사님들이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그분들 가운데 한 분이 저에게 “목사님은 죄 안 짓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어려서 남의 밭에 들어가 참외 서리, 사과 서리하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의롭다고 하십니까?” “다른 것은 잘 모르는데 성경에서 의롭다고 하기 때문에 의로운 줄 압니다. 로마서 3장 23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으매. 24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여러분, 하나님이 의롭다 하시면 의로운 것 아닙니까?” 이 얘기를 듣던 목사님들이 조용해지더니 갑자기 “아멘” 하며 강대상으로 올라와 저를 아버지라 부르며 너무나 놀라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복음의 문이 열리다

여러분, 우리 선교회는 이미 30년 전부터 인터넷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이형모 장로님이 구원을 받고 어느 날 “목사님, 선교회 홈페이지 이름을 ‘굿뉴스’라 하고 싶어서 검색해 보니 아무도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며 춤을 추다시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굿뉴스(Goodnews)’라는 인터넷 주소를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국제청소년연합(IYF) 사단법인 등록 과정에서는 영어말하기대회를 개최하며 영상을 인터넷방송으로 했습니다. 그것을 본 담당공무원이 깜짝 놀라는 일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런 일들이 정말 놀랍게 이루어졌습니다. 
지난 온라인 성경세미나를 254개 방송국을 통해 전 세계 100여 개국 10억 명의 시청자를 대상으로 방송을 했습니다. 그 후 미국의 기독교 방송국 CTN(Christian Television Network)에서 제 설교를 정기 방송하고 있고, 남미의 엔라세(Enlace) 방송국에서도 정기 방송하기로 했으며, 러시아 TBN에서는 이스라엘에 방송해 달라고 사장님이 직접 부탁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선교회를 통해 복음 전할 문을 열어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립니다.
- 2020. 6. 21. 주일 오전 예배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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