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과 마음을 같이하여 함께 사는 복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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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과 마음을 같이하여 함께 사는 복된 삶
[열왕기하 4장 1절 ~ 7절] 2020년 2월 23일 주일 오전예배 설교 - 801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20.02.29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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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어려움 앞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코로나로 인해 온 나라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특히 바이러스에 감염된 분들의 마음이 굉장히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렇게 우리 인생에 어려운 일이 갑자기 닥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제 주변에 저와 비교할 수 없이 잘 사는 분들이 많은데 그런 분들도 갑자기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길이 없어 무척 힘들어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늘 아침 읽은 열왕기하 말씀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선지자 생도의 아내가 남편이 죽고 두 아들과 잘살아 보려고 했지만 결국 아들을 종으로 팔아야 할 정도로 큰 빚을 지고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이 말씀은 그를 통해 어려움을 만날 때 하나님이 함께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가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저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려움을 당할 때가 참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저를 도우셨던 하나님의 손길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예전에 대구 파동으로 이사를 했던 날 일입니다. 하루 종일 이삿짐을 나르고 피곤해서 깊은 잠에 빠졌는데 한밤중에 딸이 울어서 깼습니다. 아내에게 아이가 왜 우느냐고 물었더니 아내가 “아무렇지 않은데 울어요”라며 애를 다독여 잠을 재웠습니다. 그러고 한참을 자는데 딸이 또 소스라치게 울었습니다. 아내에게 “왜 그렇게 애를 울려요? 불을 켜 살펴봐요”라고 말했습니다. 아내가 살펴보더니 아무 이상이 없자 다시 딸을 재운 후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나 방문을 열었습니다. 그 당시 우리는 단칸방에 살았는데 방문을 열면 바로 지붕이 보이는 밖이었습니다. 아내가 방문을 열고 찬바람을 맞더니 푹 쓰러졌습니다. 쓰러지는 아내를 보며 우리 식구가 연탄가스를 마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도 쓰러질까 봐 누운 채로 자는 딸을 발로 밀어서 방문 앞까지 갔습니다. “누가 좀 도와주세요!”라고 외치니까 옆집 사람들이 뛰어와서 우리 식구들을 그 집 마루에다 이불을 깔고 잘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그분들과 친하게 지내게 되었고 우리 교회에도 나오게 되면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날 일을 떠올릴 때마다 ‘만일 그날 딸이 울지 않았다면 우리 가족은 다음날 다 시체로 발견되었을 텐데…. 하나님이 지켜주셨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습니다. 

선교학교의 시작

제가 이런 간증을 하려고 하면 끝이 없습니다. 제가 어려울 때, 곤고할 때, 슬플 때 제 마음에 힘이 되어 주시고 길을 인도해 주시는 주님이 너무나 감사합니다. 1976년에 선교학교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이 저에게 선교학교를 하라는 마음을 주시는데 그것이 너무 부담스럽고 싫었습니다. ‘하나님, 저 같은 사람이 무슨 학교를 합니까? 저 못합니다.’ 그 후에는 별다른 마음이 들지 않아 하나님이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다시 선교학교에 대한 마음을 주시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마음을 정하고 처외삼촌을 찾아갔습니다. 그분은 우리나라 성서공회 설립자 중의 한 분입니다. 예전 성경에는 발행인에 그분 성함이 있었습니다. 제가 그분을 찾아가 선교학교에 대한 계획을 설명하고 함께 하시면 안 되겠냐고 여쭤보았습니다. 그분이 이야기를 들으시고 너무나 기뻐하시면서 좋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본인은 나이가 많아 오히려 피해가 될 것 같다며 뒤에서 도우시겠다고 하시더니 신학 원서들을 꺼내셔서 선교학교 수업할 때 참고하라며 한 상자를 주셨습니다.

세계 선교의 중심 역할을

신학교를 한다는 것이 정말 막막했지만, 교회 성도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모두가 깜짝 놀라며 저에게 물었습니다. “선교학교를 어디서 합니까?” “여기서 합니다.” “밥은 어디서 먹습니까?” “여기서 먹습니다.” “목사님도 자주 굶으시는데 학생들은 뭘 먹습니까?” 그렇게 선교학교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땐 누가 봐도 초라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에서 이름 있는 선교사님들은 다 우리 선교회 분들입니다. 가장 힘있게 복음을 전하시는 목사님들도 다 우리 선교회 분들입니다. 당시에는 정말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헌금을 하고 싶었지만

사람들은 시간과 환경에 의해서 변합니다. 환경이 좋을 때도 있고 어려울 때도 있지만 그 속에는 우리가 당장 보지 못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숨겨져 있습니다. 1962년 그 시절에 저는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그 형편에서 벗어나 보려고 별별 노력을 다 해봤지만 벗어날 길이 없었습니다. 마지막 기대를 하고 기술하사관 시험을 쳤지만 앞니가 조금 깨진 것 때문에 거기에서도 떨어졌습니다. ‘왜 나는 안 되지? 다른 사람들은 다 되는데 내가 무슨 죄가 많다고….’ 이런 생각까지 들면서 큰 절망에 빠졌습니다. 그때 하나님을 향해 얼마나 간절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다 그해 10월 7일 죄 사함을 받고 너무나 감사해 주님께 뭐라도 드리고 싶었습니다. 헌금을 드리고 싶었지만 한 달, 두 달이 지나도 돈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때 “늘 울어도 눈물로서 못 갚을 줄 알아 몸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라는 찬송이 있었는데 ‘저는 이 쓸모없는 몸 어디다 쓰겠나’라는 생각에 이 찬송조차 부를 수 없었습니다. 제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당시는 6·25전쟁 이후라서 마을에 남자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교회 모친님들이 사는 집에 가보면 방구들이 깨져서 불을 때면 연기가 방에 가득찼고, 비가 오면 지붕이 새서 세숫대야 여러 개를 받쳐놓고 살았습니다. ‘내가 다른 것을 할 줄 몰라도 방구들 고쳐 주고, 지붕 고쳐 주는 일은 할 수 있겠다.’ 이렇게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하나님을 섬기며 늙어갈 수만 있어도 너무나 행복할 것 같았습니다. 

복음의 일을 할 때

똑같은 구원을 받아도 사람의 마음은 저마다 다릅니다. 구원받은 이후에도 육신적인 삶으로 흘러가는 사람이 있고 정말 뜨겁게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종종 성도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떤 분들은 저보다 더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봅니다. ‘저 형제님은 어떻게 저렇게 주님을 사랑할 수 있을까? 저 자매님은 어떤 마음을 가졌기에 예수님을 위해 살 수 있을까?’ 그들을 보면 제가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런 형제자매님들이 있다는 것이 행복했습니다.
우리 선교회는 많은 전도자를 배출하고 국내외에서 매년 집회를 엽니다. 그러나 복음의 일을 시작할 때는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왜 이렇게 어렵지. 이거 이제 안하면 안될까.’ IYF 월드캠프를 할 때도 재정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어려움을 만납니다. 그런데 행사를 마칠 때 쯤에는 하나님이 도우신 일들을 보면서 ‘이렇게 좋은 복음의 일을 왜 안 한다고 했지’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복음의 일을 할 때 한 번도 넘어지게 하신 적이 없습니다.

굿뉴스코 해외봉사활동

IYF에는 굿뉴스코 해외 봉사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그들이 1년 동안 해외봉사활동을 다녀와 각 나라에서 보고 배운 것을 공연으로 우리에게 소개하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이 젊은이들이 요즘 아이들 맞아? 어떻게 저런 건강한 정신을 가질 수 있어’라며 감동의 눈물을 흘릴 때가 많습니다. 굿뉴스코 단원들이 인디언과 함께 IYF 뉴욕월드캠프에 참석했습니다. 그들이 사는 인디언 마을에는 소망없이 마약에 빠지고 자살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런 그들이 IYF 월드캠프에 참석해 마음이 바뀌고 달라졌습니다.
‘타일러 무디’라는 인디언 친구도 이곳에 참석했습니다. 올해 그가 한국에 와서 만났는데 얼굴에 기쁨과 희망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나중에 타일러도 예전에 여러 번 자살을 시도했다고 들었는데 그런 어려움이 있는지 몰랐습니다. 그랬던 그가 IYF와 함께하면서 이런 귀한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아나니아는 왜 죽었을까

구원받은 형제자매들은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불문하고 하나님의 힘이 살아 역사하십니다. 그런데 반대로 사단도 생각을 통해 일합니다. 사도행전 5장에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믿는 마음으로 자신의 전 재산을 드리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땅 판 값 얼마를 감추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베드로가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네 마음에 사단이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었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라고 말하자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저는 처음에 그 이야기를 보면서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나니아를 꼭 죽여야만 했을까?’ 만일 아나니아가 죽지 않았다면 예루살렘 교회가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나니아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그는 숨겨둔 돈을 반드시 사용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전 재산을 드린 형제자매들이 ‘어? 아나니아가 돈이 어디서 났을까? 이럴 때 쓰려고 감춰놨구나. 지혜롭네. 우리는 다 드렸는데. 우리가 바보짓을 했네’ 하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떠나 이제는 어려울 때마다 인간의 방법을 찾았을 것입니다.

분명한 신앙을 가지면 

교회 안에서도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이끈 어둡고 부정적인 사단의 힘이 강하게 작용합니다. 우리가 죄 속에 빠지도록 하고, 믿음의 삶을 살지 못하게 합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많은 사람들이 사단에게 속아서 자기가 옳다며 교회와 복음을 대적합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다가도 사단이 주는 생각 하나를 받아들이면서 무서운 사람이 됩니다. 성경에 열두 제자 중에 가룟 유다에게 사단이 끊임없이 생각을 넣어서 자기 사람으로 만들고 예수님을 파는 일에 사용합니다.
아나니아도 자기가 땅값을 숨긴 그 일로 말미암아 그렇게 큰 벌을 받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교회 안에서 우리가 분명한 신앙을 가지면 하나님의 길을 따라가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나이가 많든 적든, 돈이 있든 없든, 잘났든 못났든 하나님의 인도 속에서 삶을 살게 됩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어떻게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하셨는지, 어떻게 성경을 깨닫게 하셨는지…, 하나님이 인도하신 그 길들을 선명하게 알게 됩니다.

물이야, 포도주야?

2017년 미국에서 기독교지도자연합(CLF)이 시작됐습니다. 800여 명의 목회자가 참석해서 한 주간 복음을 전했는데 많은 분들이 이 복음을 듣고 “어떻게 성경을 이렇게 쉽게 푸느냐?”며 놀라워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원래 쉬운 거라고 말했더니 “성경이 쉽다고요? 말도 안 됩니다”라고 이해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설명을 했습니다. 
성경에 갈릴리 가나의 혼인 잔치에 포도주가 모자랐는데 예수님이 물을 부어놓고 포도주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포도주라고 하셨다면 그것을 포도주라고 믿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는 물을 포도주로 만들 수 없지만 예수님은 그런 능력이 있습니다. 그 말씀을 그대로 믿으면 쉽습니다. 그런데 자기 생각을 믿는 사람은 고민합니다. ‘이게 물인데 왜 포도주라고 하시지? 역사적으로 물이 포도주가 된 적이 있었나? 포도주의 성분이 무엇이길래 물을 포도주로 만들 수 있지?’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의 생각으로 이 말씀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믿음은 연구하는 게 아닙니다. 믿음은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포도주라면 포도주가 맞습니다. 이렇게 믿으면 너무나 쉽고 하나님과 한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가나로 선교를 간 사모님

사단은 우리 마음 속에 수없이 많은 생각을 넣어 우리가 신앙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세상의 욕망을 따르게 하는 생각들, ‘말씀은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불가능해’라며 하나님을 불신하게 하는 생각들…, 사단은 이런 방법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고 육신의 욕망을 따라 타락된 길을 가게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똑똑해도 사단은 우리보다 훨씬 지혜롭습니다. 그래서 사단의 이야기만 들으면 모든 일에 부정적인 면만 보이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인정하는 믿음의 눈으로 성경을 대하면 우리 삶 속에 일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보입니다. 
우리 선교회에 한 사모님이 있었습니다. 남편을 따라 아프리카 가나로 선교하러 갔는데 그곳의 열악한 환경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물도 더러워. 벌레도 너무 많아. 너무 덥고 화장실에 물도 안 나와. 여기에서 어떻게 살아?’ 그러던 어느 날 선교 본부에서 정글에 들어가 전도를 하라고 했습니다. 사모님은 가기 싫었지만 남편이 너무나 기뻐해 싫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어 따라갔습니다.
한 집에 초대를 받아 갔는데 초청하신 분이 말했습니다. “선교사님, 죄송합니다. 제가 대접할 것이 없습니다. 저기 바나나가 많이 매달려 있지만 저것은 아내의 것입니다. 아내는 부자이지만 저는 가난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사모님은 생각했습니다. ‘아니 어떻게 한집에 살면서 얼마 안 되는 바나나 가지고 네 것 내 것을 따지고 있어? 남편이 배가 고픈데도 바나나를 못 먹게 하다니 그게 무슨 부부야’ 그렇게 생각을 하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자기는 바나나 가지고 남편과 나누고 있지는 않지만 그 남자의 아내처럼 자신도 남편과 다른 마음을 품고 자기만을 위하면서 산다는 것을 발견하고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잘 살아보려 했지만

오늘 읽은 열왕기하 4장의 선지자 생도의 아내도 남편과 함께했지만, 인간적인 생각으로 바라보니 ‘왜 선교학교에 와서 고생해야 해? 그냥 교회 다니면 안돼?’라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죽었습니다. 선교학교를 나와서 두 아들을 잘 키워 보려고 이것저것 해봤지만 다 망하고 이제는 두 아들이 종으로 팔려갈 형편이었습니다. 생도의 아내가 시련과 어려움을 겪으면서 ‘이제 내게는 길이 없네. 내가 하나님이 계신 것을 잊고 있었구나. 잘 살아 보려는 생각에 하나님을 버리고 신앙을 소홀히 여겼구나’ 하며 마음을 돌이켰습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알면 세상의 부귀영화가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알게 됩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어떤 사람이 남의 집 밭을 갈아주는 일을 하다가 무언가가 걸려 파보니 큰 금덩어리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얼른 더 깊이 땅을 파고 금덩어리를 묻었습니다. 이제 그 밭은 다른 사람이 볼 때는 돌멩이가 가득한 쓸모없는 밭 같지만 그 사람 눈에는 자신의 전 재산을 다 팔아서라도 사야 하는 보화와 같은 밭입니다. 
그 밭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은 “바보같이 저 돌밭을 비싼 돈을 주고 사다니”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 있는 그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수많은 어려움과 핍박과 반대가 있을지라도 복음을 전합니다. 제가 오늘까지 이 단 위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은혜와 긍휼, 사랑을 몰랐을 때는 예수님이 시들하게 보여서 세상에 마음을 두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그 죽음으로 인해 우리 죄를 씻어주신 것을 발견한 사람은 더이상 세상에 속해 살지 못합니다.

이제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오늘 아침에 선지자 생도의 아내 이야기를 읽으면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두 아들이 종으로 팔려갈 어려움에 처한 그가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가 모든 문제를 해결받았습니다. 그 후에 생도의 아내와 두 아들이 어떤 삶을 살았을지 그에게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당신의 두 아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당연히 아버지처럼 선교학교에 가서 지금은 파송을 받아 복음을 전하고 있지요.’ 여러분, 사단은 끊임없이 예수님이 시들하게 보이게 만들고, 교회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생각을 넣어줍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알면,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았는지 알면 그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한마음이 되면 그 어떤 것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생도의 아내가 두 아들이 종으로 팔려갈 형편에 있었지만 하나님을 만나자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여러분, 이제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생각해봅시다. 이 더러운 죄인을 위해 피 흘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생각합시다. 베드로가 사도직을 버리고 다시 고기를 잡으러 갔지만, 예수님이 그를 찾아가 다시 사도로 삼으신 것처럼 우리는 세상으로 갈 수 없고 예수님으로 충만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예수님과 마음을 같이 하는 복된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 2020년 2월 23일 주일 오전예배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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