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림동의 새로운 근대역사 명소 오방 최흥종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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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림동의 새로운 근대역사 명소 오방 최흥종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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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20.02.07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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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최초의 목회자이자 독립운동가 최흥종 선생

1880년 5월 2일 광주에서 태어난 최흥종 선생(1880~1966)은 젊어서는 일제의 순검으로 활동하기도 했고 ‘최망치’라 불리울 정도로 싸움꾼의 삶을 살기도 했다. 그러던 중 천대받는 나환자 돌봄에 헌신하던 포사이드 선교사를 만나 새 삶의 길로 들어선다. 그는 나환자 사역에 동참하고 평양신학교에 들어가 공부한 뒤 북문안교회 목사가 되면서 광주 최초의 목회자가 되었다. 이후 여수 애양원, 나주 호혜원 등 나환자 정착촌을 건립해 나환자들을 돌보는 등 낮은 자세의 삶을 살았다. 
3.1운동에 가담해 14개월의 옥고를 치렀던 그는 일제에 항거한 독립투사이기도 하다. 일제가 교회의 신사참배를 강요하자 1935년 항거하는 의미에서 거세수술을 받고 ‘최흥종 사망 통지서’를 교단에 발송하기도 한다. 그는 식욕, 색욕, 물욕, 명예욕, 생명욕 등 다섯 가지 욕망을 버린다는 뜻으로 호를 오방이라고 했다. 지역사회의 문제, 가난하고 헐벗은 이들의 아픔, 비참한 조국의 처지 등 당대의 모든 문제와 함께했던 선각자요 지식인이며 한 시대의 등대와도 같은 큰 인물이었다. 

전시를 통해 그의 발자취를 한눈에 볼 수 있어

‘광주의 아버지’라 불리는 오방 최흥종 선생을 기리는 오방 최흥종 기념관(광주 남구 양림동 제중로64)이 지난해 10월 16일 개관했다. 기념관 전시실은 오방을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새벽의 빛’, ‘여정의 시작’, ‘신행일치’, ‘영원한 자유인’ 4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방에는 시기별로 그가 어떤 길을 어떻게 걸었는지 잘 보여준다. 
그의 유품 중에는 선교활동에 쓴 외국어로 된 성경이나 친필, 김구 선생이 써 준 휘호 등 눈길을 사로잡는 것들이 많다. 또 건물 중앙 중정 부분을 비워 빛이 들게 한 뒤 그 안에 오방의 동상을 세운 것도 독특하다. 이 공간은 바로 옆 유진벨선교기념관과 양림미술관으로 이어지도록 설계됐다. 관람객 김희연(24) 씨는 “기념관 내부 설명과 인테리어가 자연스럽게 최흥종 선생님의 삶과 같이 흘러가는 느낌이라 편안하게 보았다”고 말했다. 이 기념관은 광주지역의 근대역사공간이자 기독교 기념마을로 그리고 양림동의 명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광주/ 정혜원 기자 gwangju@igood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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