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할린동포 반드시 기억해야 할 우리 민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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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동포 반드시 기억해야 할 우리 민족입니다
기획 신년 기획특집-③ 일제 강점기 역사의 희생양 영주 귀국한 그들의 아픔과 삶에 얽힌 이야기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20.01.17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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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날’을 맞았다.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방문하는 설레임으로 분주하면서도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설 연휴. 2000년부터 안산시에 삶의 터전을 잡은 사할린동포들은 어떤 명절을 맞이하고 있는지 현지를 방문해 보았다. 

사할린의 추위보다 힘들었던 한국 정부의 외면(?)

“우리보다 부모님들이 한국에 오고 싶어 했어요. 그 간절한 마음 때문에 이곳에서 잘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지난주 안산시 안산고잔고향마을에서 기자가 만난 사할린한인 1세들의 말이다. 
설 명절을 앞두고 기자가 찾아간 안산고잔고향마을은 외관상 여느 아파트와 다를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사할린동포들의 애환과 그 삶을 느낄 수 있었다. 고국 귀환을 위해 희생했던 故 박노학 씨와 故 박해동 씨의 흉상이 있었고 러시아어 안내문과 러시아 음식점도 눈에 띄었다. 
1939년 6월 일제강점기 말, 일본은 전쟁물자 지원을 위해 강제징용으로 한국인 약 15만명을 사할린 섬으로 끌고 갔다. 사할린은 러시아 연해주의 동쪽 오호츠크해와 일본 홋카이도 북부에 위치한 섬으로 본래 러시아 영토였지만 1905년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점령했던 곳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사할린은 다시 러시아로 반환되어 일본인들은 모두 본국으로 돌아갔고 중국인도, 사할린 북방 소수민족도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한국인들도 귀국을 기대하며 사할린 남단 코르사코프 항구에서 자신들을 데리러 올 배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하지만 이들을 위한 배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한인들은 사할린의 매서운 추위도 견디기 어려웠지만 한국 정부가 자신들을 외면한 것을 비관하여 정신이상자가 되거나 자살을 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할린동포의 귀환, 각계각층의 노력으로 이룬 성과

사할린에 남은 한국인은 러시아 정부로부터 사회주의 교육을 받아야 했고, 직장에서의 수많은 불이익과 여행의 자유를 제한받는 등 많은 제재를 받으며 힘겨운 세월을 보냈다. 당시 경제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북한은 사할린 거주 무국적 한국인들에게 북한 국적을 취득할 것을 권유했지만 이들은 모두 북한 국적을 거부했다고 한다. 이들의 유일한 소원은 한국으로 귀환하는 것이었다. 
계류됐던 사할린한인들의 귀환은 종전 후 일본인 아내를 따라 일본으로 귀환했던 박노학 씨의 ‘화태귀환한국인회’ 설립으로 그 물꼬가 트였다. 그는 귀환 희망자의 탄원서를 접수하여 일본 여론에 호소하는 등 민간차원의 귀환운동을 활발히 전개시켜 사할린동포 문제를 국제사회에 알리게 됐다. 이어 대한적십자사와 국제적십자사와의 협력 등 많은 민간단체의 노력으로 사할린동포들과 한국 가족들의 만남, 그리고 1989년부터 사할린 한국인의 모국 방문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이후 1994년 한일 정상회담 결과로 사할린 한인 1세를 대상으로 ‘영주귀국시범사업’이 진행되어 한국 정부가 건립 부지를 제공하고 일본 측이 건설경비를 지원하는 조건으로 지난 2000년 2월 한인 1세(1945.8.15. 이전 출생자) 1천여명이 입주하면서 드디어 사할린한인들이 안산고잔고향마을에 둥지를 틀게 되었다.(현재 600여명 거주)

한인 1세들 고향은 사할린 그러나 뿌리는 한국이다

안산시 고잔고향마을 영주귀국회 노인회 양윤희(80) 회장은 “88 서울올림픽 때 처음 한국의 모습을 TV로 보면서 온 가족이 울기도 많이 울었다. 10년만 더 빨리 이런 사업이 진행됐어도 부모님과 같이 한국 땅을 밟았을 텐데…”라며 아쉬움을 표현했다. 
안산 사할린동포 복지관은 사할린한인들을 위해 행정적 업무부터 건강과 복지까지 모든 부문을 지원하고 있다. 특히 행복학습관을 통해 한글교실, 영어교실, 노래교실, 춤, 체조 등 모든 여가활동을 책임지고 있어 이들 대부분은 한국에서의 삶을 만족해한다. 그러나 명절이 되면 어김없이 한인 1세들은 또 사할린을 그리워하고 그곳의 음식을 그리워한다. “사실 어떻게 보면 고향은 사할린인데 우리의 뿌리는 이곳인 거죠. 거기에 있을 땐 여기 오고 싶었고, 여기 있으면 가끔 사할린이 그립고, 어디가 진짜 내 고향인지 모르겠어요”라고 웃으며 말하는 그들의 표정 너머로 왠지 모를 아픔이 느껴졌다. 
현재 약 2700명의 사할린 한인들이 국내에 거주하고 있다. 그동안 고국에 오고 싶어도 오지 못하고 이국땅에서 생을 마쳐야 했던 그들, 그리고 뿌리를 찾아 낯설지만 한국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는 그 후손들, 이들 모두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우리 민족임에 틀림없다.
고정연 차장대우 jyko@igood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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