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해할 수 없어도 말씀을 그대로 믿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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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해할 수 없어도 말씀을 그대로 믿을 때
[요한복음 4장 46절 ~ 54절] 2019. 12. 1. 주일 오전예배 설교 790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19.12.07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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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에서 행하신 표적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제일 먼저 행하신 일은 가나 혼인 잔칫집에 포도주가 모자라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일이었습니다. 오늘 읽은 요한복음 
4장은 왕의 신하가 병든 아들을 위해 예수님을 찾아가 아들이 병에서 나은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 행하신 두 번째 표적입니다. 가버나움은 갈릴리 호수를 중심으로 북쪽에 위치한 작은 도시이고, 가나는 남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왕의 신하는 아들이 병들어 죽어가고 있었는데 마침 예수님이 갈릴리 가나에 계시다는 소문을 듣고 가버나움에서 가나까지 내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가 “아들을 살려 주십시오”라고 간절히 부탁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왕의 신하가 예수님께 “제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하며 아들을 살려 달라고 하자, 예수님은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말씀을 믿고 돌아가는 길에 종들을 만나서 아들이 나았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큰 문제점은 내 생각이 아무리 옳고 성경을 정확히 읽었다 해도 예수님의 마음과 내 마음이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성경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과 인간들의 대화가 수없이 많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이나 모세가 하나님과 나누는 대화, 베드로와 예수님의 대화를 보아도 하나같이 인간의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과 다릅니다.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아브라함의 경우를 봅시다. 어느 날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아브라함아.” “예, 하나님.” “네 아내 사래를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해라. 내가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주게 하리라.” 전능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지만 아브라함은 “100세 된 사람이 어떻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90세인데 이스마엘이나 주 앞에 살게 되기를 원하나이다”라며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아브라함이 99세 때 하나님이 말씀하셨고, 당시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는 89세로 90세가 다 되어 경수가 끊어졌습니다. 모든 면에서 애기를 낳는 것이 전혀 불가능했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첫 사람 아담의 죄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은 첫 사람 아담에게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6~17)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3장에서 뱀(사단)이 아담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그때 뱀이 아담을 유혹합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1~5) 선악과를 그냥 따먹으라고 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먹는 날에는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고 한 것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뱀의 말을 따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었습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을 짓밟고 뱀의 말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 구조는 하나님의 말씀이냐 뱀의 말이냐 그중에 어느 하나를 선택하도록 되어 있는데 아담은 뱀의 말을 선택하여 뱀의 편이 됐습니다. 그때부터 악한 영이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면서 우리 마음속에 생각을 집어넣는 일을 해오고 있습니다.

나를 끌고 가는 어떤 힘

저는 오랫동안 교도소 전도를 통해 수많은 재소자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을 만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재소자들마다 범죄의 비밀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심리가 비밀일수록 더 얘기하고 싶어합니다. 그것을 함부로 얘기하면 안되는데 목사인 제게 편하게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처음 시작할 때 “나는 이 일이 있기 전까지는 정말 행복했어요”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리고 자기 마음에 어떤 생각 하나가 들어와서 지금까지 자신이 전혀 생각하지 못한 행동으로 자신을 끌고 갔다고 합니다. 마지막에는 “나는 그때 제 정신이 아니었어요. 뭐에 씐 것 같아요”라고 말합니다. 

두 가지 생각의 싸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내 마음속에서 이런 생각들이 올라오는구나’ 합니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우리 마음속에서 두 가지 생각이 서로 싸우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8장을 예로 들면, 어떤 여자가 간음하다가 잡혔습니다. 그 여자가 ‘저 남자 멋있다. 하룻밤 같이 자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합시다. 그런다고 바로 간음을 한 게 아니라 그 여자의 마음속에서 ‘안돼. 이것은 죄악이야. 잡히면 돌에 맞아 죽어’ 하며 다른 생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즉 간음하고 싶은 생각과 간음하면 안된다는 생각, 두 가지 생각이 그 여자의 마음속에서 서로 싸우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정확하게 알아야 할 사실은 우리는 두 가지 생각 중에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두 가지 생각 중에 하나는 악령이 넣어 주는 생각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악령이 넣어 준 음란한 생각을 이길 힘을 주시면 우리가 ‘간음하면 안돼!’ 하고 그 악한 생각을 이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악한 영이 강하게 역사하면 우리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죄를 짓게 됩니다.

교도소 교화위원 시절

제가 교도소 교화위원으로 지내면서 재소자들과 성경공부를 했는데 어떤 재소자가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아 형제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저는 ‘저렇게 착하고 얌전한 형제가 무슨 죄를 지었을까?’ 하며 너무 궁금해서 실례인 줄 알지만 그 재소자에게 “형제는 죄명이 뭐에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 재소자의 얼굴이 갑자기 빨개지더니 모기만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살인에 살인미수입니다.” “뭐라고요? 형제가 사람을 죽이고, 또 죽이려다 잡혔어요? 내가 볼 땐 파리 한 마리도 못 죽일 사람 같은데.” 
하루는 그 형제가 울면서 자신이 사람을 죽인 이야기를 했습니다. 부산에서 결혼하여 너무나 행복하게 살았는데 어느 날부터 아내가 뭔지 모르게 자기를 속인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우연히 아내가 춤을 추러 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내를 위협하고 달래기도 했지만 계속 춤을 추러 다녔습니다. 그는 미칠 것 같았고 말을 듣지 않는 아내가 죽일듯이 미웠습니다. 그러다가 처형이 아내를 데리고 춤추러 다닌다는 사실을 알고 처형을 찾아가 “처형, 부탁인데 우리 집사람 좀 데리고 다니지 마세요” 하며 애원하다시피 말했습니다. 그런데 처형은 “너 같은 게 뭔데? 내 동생 데려다가 고생시키는 주제에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야”라며 아주 모욕적으로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형제가 정신이 핑 돌았습니다. 한참 있다 보니 자기 손에 칼이 들렸고 처형이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생각 하나가 들어와

그는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사람을 죽였네’ 하며 밖으로 나가서 “다 나와. 죽여 버릴 거야” 하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는 이렇게 살인에 살인미수가 된 것입니다. 교도소로 국선변호사가 찾아왔는데 “나는 변호사 필요 없어요!” 하며 그를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나중에 그 변호사가 다시 찾아와서 “내가 변호비 몇 푼 받으려고 이러는 줄 알아요? 그거 다 해도 막걸리 한잔 값도 안됩니다. 젊은 사람 인생이 불쌍해서 왔어요”라며 야단을 쳤다고 합니다. 결국 그 변호사의 변론을 통해 사형은 면했습니다. 그를 보면 ‘저 사람이 어떻게 죄를 범했을까’ 싶을 정도로 정말 순수합니다. 
여러분, 저는 우리에게 어떤 생각 하나가 들어와서 우리를 그렇게 끌고 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람의 마음속에서 종종 악으로 달려가 범죄하고 싶은 생각이 솟구칩니다. 만일 그것이 내 생각이라면 그 생각 하나뿐이어야 하는데 반대로 다른 생각이 올라와 싸움을 합니다. 즉, 우리 마음속에서 서로 다른 두 가지 생각이 싸우다가 결국 강한 생각이 우리 육체를 장악합니다. 실제로 우리가 간음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우리 마음속에서 싸우는  두 가지 생각 중에 어떤 생각이 이기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두 가지 생각 중에 하나는 내가 원하지 않는 사단이 넣어준 악한 생각이 분명한데 우리는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이 모두 자기 생각이라고 여깁니다. 

가버나움에서 온 왕의 신하

여러분, 오늘 읽은 요한복음 4장에서 왕의 신하는 마음의 세계를 잘 몰랐습니다. 성경을 분석해 보면 그의 마음속에서 악한 영이 주는 생각과 예수님의 생각이 부딪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7절에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에 오심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주소서 하니 저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은 갈릴리 가나였고, 왕의 신하가 사랑하는 아들이 병들어 누워 있는 곳은 가버나움입니다. 제가 지도를 보고 대강 계산한 바로는 갈릴리 가나에서 가버나움까지 약 25㎞ 떨어져 있습니다. 한 시간에 보통 5㎞씩 걷는다면 적어도 5시간 정도 걸어야 할 거리였습니다. 왕의 신하는 아들을 위해 예수님을 만나려고 가버나움에서 가나까지 왔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주소서”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가버나움에서 병들어 죽어가는 아들에게 예수님이 찾아가 병을 고쳐주시길 원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라고 하신 것은 표적이나 기사를 보고 믿지 말고 그냥 말씀을 믿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돌아간다면 아들이 이미 나아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표적과 기사를 보지 않아도
 
여기서 왕의 신하와 예수님의 마음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버나움까지 가시기 어려운 사정이 있으셨겠지만, 그의 아들을 빨리 살리기 위해서 직접 가시지 않고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라고 말씀해서 살리실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왕의 신하가 “네 아들이 살았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믿음으로 돌아갈 수 있느냐 없느냐 입니다. 예수님은 왕의 신하가 “네 아들이 살았다”는 당신의 말씀을 믿길 바라셨지만 왕의 신하는 예수님의 말씀만으로 자기 아들이 살게 될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습니다. 이제 그는 예수님이 가버나움으로 아들을 고쳐주시러 가실 것 같지 않으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믿을 것이냐 믿지 않을 것이냐 선택해야 했습니다. 

빛이 있으면 어둠은 물러가

여러분, 창세기 1장에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창 1:1~2)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는데, 하나님이 창조한 땅은 왜 혼돈과 공허, 흑암 속에 있었을까요? 땅은 몇 억 년이 흘러도 스스로 어둠에서 벗어나거나 혼돈과 공허를 물리칠 힘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신이 그곳에 계셨고 “빛이 있으라” 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어둠아 물러가라”는 말씀입니다. 빛이 있으면 어둠은 물러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3~4)는 말씀은 “어두움은 하나님 보시기에 나쁘더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곧 빛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시면 어둠이 물러갑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있는 어둠 즉 곤고나 슬픔, 고통을 물리치려고 우리가 발버둥 쳐야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그 어둠이 물러갑니다. 우리가 이런 마음의 세계를 알면 우리 에게 절망, 공허, 고통, 죽음 등 어둠이 찾아왔을 때 우리 마음속에 간직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어둠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전갈의 독을 이기다

몇 년 전에 아프리카 라이베리아에서 해외봉사활동 중이던 최요한 학생이 전갈에 쏘여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병상에 있는 최요한 학생과 통화를 했습니다. “요한아, 넌 전갈에 쏘여서 지금 죽어가고 있어. 의사는 한두 시간밖에 살 수 없대. 그러나 하나님은 이사야 40장 31절에서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라고 하셨어. 하나님을 앙망해봐. 너에게 새 힘을 주실 거야. 그러면 너는 전갈의 독을 이길 수가 있어.” 최요한 학생은 죽음 앞에 있다가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는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는데 다음 날 아침, 전갈의 독을 이기고 기적적으로 살아났습니다. 

내 말만 듣고 나를 믿으라

여러분,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왕의 신하는 예수님이 가버나움으로 가셔서 죽어가는 아들을 살려주길 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왕의 신하에게 아들의 병을 고쳐줄 뿐만 아니라 그의 믿음도 일으키길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죽어가는 아들이 있는 가버나움에 가시지 않고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왕의 신하에게 네 아들이 살아나는 것을 직접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내 말만 듣고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왕의 신하에게 ‘네 아들이 살았다’라고 하셨기 때문에 그가 또다시 아들의 병을 고쳐달라고 부탁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말씀을 믿지 않고 죽어 가는 아들을 그냥 두면 죽을테니까 결국 아들을 살리려면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일을 자세히 생각해 보면 이것은 예수님이 왕의 신하를 믿음으로 이끄신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를 믿음으로 이끄는 일을 하십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사단의 이끌림을 받고 죄악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서로 다릅니다. 그런 우리 생각은 항상 잘못되었고 예수님의 생각은 옳기 때문에 두 생각이 하나가 되려면 말씀을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 생각을 따라가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쪽으로 우리 마음을 돌이켜야 합니다. 

믿음 안에서 역사하시고

여러분, 왕의 신하가 가진 마음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그는 ‘예수님이 병자를 고치신다는 것을 알았지만 예수님을 내가 믿지 않았네. 예수님께서 아들이 살았다고 하셨으면 내 아들은 살았어. 예수님, 감사합니다. 내 아들이 살았습니다’ 하며 가버나움 집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종들을 만났습니다. “주인님, 아드님의 병이 다 나았습니다.” “언제요?” “어제 제 칠 시에 열이 떨어졌습니다.” “아, 예수님이 ‘네 아들이 살았다’고 말씀하셨을 때야. 예수님이 갈릴리 가나에서 말씀하셨는데 가버나움에서 그 말씀의 능력이 나타났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이 모두 기뻐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가 믿는 믿음 안에서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그냥 교회 다니며 착한 일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생각과 전혀 다른 말씀을 믿는 것이 온전한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럼 우리에게 어떤 문제나 어려움이 있더라도 ‘지금 예수님이 나와 같이 계셔.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지만 예수님은 해결하실 수 있다고 믿으면 이 문제가 해결되겠네’ 하며 어둠에서 벗어날 수 있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예수님을 의지하는 삶

여러분, 지금까지 우리가 살면서 얻은 지식과 경험을 다 버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믿읍시다. 우리가 이해되는 것만 믿는 것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어도 말씀을 그대로 믿읍시다. 그러면 놀랍게도 우리가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 예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주님이 우리 삶의 문제들을 해결하시는 걸 볼 것입니다. 저도 그렇게 믿어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을 경험했고 제 주위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일하시는 것을 봤습니다. 이제 우리 힘으로 살지 말고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서 예수님을 의지합시다. ‘예수님이 내 죄를 깨끗이 씻었다면 나는 깨끗해. 예수님이 나를 의롭다고 하시면 나는 의로워’ 하며 우리 생각을 버리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달려가면 우리가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 예수님의 능력이 우리를 통해 나타납니다. 또한 우리가 예수님이 주신 복으로 그 나라 갈 때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하시는 소리를 듣게 될 줄 믿습니다. 
- 2019. 12. 1. 주일 오전예배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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